등록 : 2012.09.10 19:24
수정 : 2012.09.1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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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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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전격 방문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강경발언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대일 강경노선은 정권 초기 “과거 마음 상한 일을 갖고 미래를 살 수 없다”는 거의 일본 면죄부성 발언이나 일본 총리의 독도 일본 땅 표기에 대해 “기다려 달라”고 발언한 사실은 물론, 최근의 한-일 군사협정 체결 시도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야당은 그의 냉온탕 외교를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냉온탕 외교라는 것은 외교의 기본이 없다는 것을 달리 드러내주는 것이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박정희는 독도가 국교정상화에 암초가 된다고 “폭파해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했고, 밀실협상의 주역인 김종필은 “독도 관리를 제3국에 맡기자”고 제안하여 오늘까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빌미를 주었다. 더구나 당시 정부는 일제에 강제동원된 사람의 규모를 턱없이 적게 잡아 피해액수를 제대로 산정하지도 못했고, 개별 소송의 길까지 막아버렸다. 더욱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원폭 피해자, 간토(관동)대지진 피학살자 등 일제 시절 조선인이 입은 피해 전반에 대해서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해서 협상 과정에서 언급도 하지 않았다. 배상금이 아닌 경제협력 자금으로, 그것도 턱없이 적은 액수로 모든 대일 과거사를 일괄처리한 박 정권의 과오 때문에 지금까지 독도 문제는 물론 모든 일본 관련 과거사가 큰 짐으로 남아 있다.
이승만 정권은 초기 강경한 대일 보상 요구를 하기도 했으나, 미국과 일본의 대일 강화협의 과정에서 독도가 제외된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엉뚱하게 쓰시마섬(대마도) 영유권 문제를 끄집어내 협상 여지만을 좁혀 놓았다. 더욱이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앞에서 “공산주의 팽창으로 인한 공동의 위험에 맞서기 위해 일본과 한국은 단결해야 하며 과거의 적대는 망각되어야 한다”고 말해 이후 한국 쪽 외교협상 입지를 크게 좁혔으며, 일본의 전후 처리를 결정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초청도 받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물론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의 동아시아 반공정책의 틀을 벗어날 수 없어서 사실상 대일 협상 과정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일본의 과거 책임을 제대로 따지지 못했다. 민족 분단과 안보 위기는 외교적 자주성과 일관성을 제약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러나 한국만큼이나 미국의 입김 아래 있었던 역대 일본 정부 대표들의 철저한 준비나 활약과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의 경우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준비부족과 전략부재의 약점을 수없이 노출했다.
그런데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고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세력판도가 완전히 바뀐 지금 한국은 이제 과거에 비해 훨씬 큰 협상의 지렛대를 갖게 되었으며, 미국만 믿고 따르면 된다는 식의 냉전시절의 외교로는 복잡한 환경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대미 우호도 중요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의 위험을 견제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왔다. 특히 남북화해는 모든 외교의 전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반북, 친미 일변도 정책으로 이 지렛대를 스스로 버렸다. 그래서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했고, 일본 우익들만 기세등등하게 만들었으며, 미국과의 통상교섭 실패로 온 국민의 생존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외교는 국가의 역량 그 자체다. 외교 실패의 파장은 수십년, 수백년을 갈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외교노선 수립 문제가 올해 말 대선정국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하는데도 후보자들 공약에 그것이 실종된 것이 더 답답하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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