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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1 19:33 수정 : 2012.09.12 15:21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세상 읽기] 어떤 특정한 ‘친구’ / 진중권

택시기사의 증언이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고압적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협박조였다는 것이다. 택시에 올라탄 후 행선지도 말하지 않고 일단 손짓으로 출발하라고 했다든지, 자양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지시했다든지, 택시기사의 증언은 꾸며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구체적이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통화를 직접 운전을 하면서 했겠는가? 정준길의 해명은 믿기 어렵다.

사건이 불거지자 정준길은 갑자기 케케묵은 사진까지 꺼내들고 친한 척했다. 그런데 금태섭 변호사에 따르면, 이 일에 관하여 이미 언론에 보도됐던 것을 제외하고 2010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보낸 문자라곤 단체 문자 두 건뿐이라고 한다. 총선 출마 전에 열린 출판기념회 모임 알리는 문자, 그리고 다음날 ‘성원해줘서 고맙다’는 문자. 한마디로 금태섭에게 정준길은 졸업 후엔 별로 얼굴 볼 일 없었던 동창이라는 얘기다.

정준길이 ‘친구’임을 강조하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금태섭 변호사를 배덕자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대한민국 사회는 내부고발자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 못하다. ‘친구’ 사이임을 강조하면 ‘둘 사이의 통화를 공개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여론을 유도할 수 있다. 사건이 불거진 후 정준길은 일관되게 이런 전략을 구사했고, 보수언론에서는 그에 적극 화답했다. “친구까지 갈라놓다니. 정치가 뭔지.”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통화의 내용이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정준길은 “2002년 당시 (서울지검) 특수3부 한국산업은행 관련 조사했던 실무 검사였다.” 그때 그는 안철수 원장을 수사 범위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게다가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 일이 불거지기 전에도 후배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건과 관련하여 새로운 수사가 진행되는지 문의하기도 했다. 물론 후배 검사는 그런 일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금정 금태섭 정준길 앱용
한마디로 정준길은 안 원장이 뇌물사건과 관계없음을 사전에 알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금태섭 변호사에게 안 원장이 “안랩 설립 초창기인 1999년 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것과 관련, 투자팀장인 강모씨에게 주식 뇌물을 공여했다”며 “(안 원장은) 대선에 나오면 죽는다”고 협박했다. 한마디로 제 입으로 그렇게 친하다고 주장하는 그 친구에게 야바위를 친 것이다. 무슨 교우관계를 이렇게 하는가?

설사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협박을 못할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친구’가 ‘협박’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외려 이 경우 대학 동창이라는 친분 관계가 협박에 사용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둘이 사적 친분이 있는 동창 사이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런 협박은 성립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편리한가? 실질적으로는 협박을 하고, 여차하면 ‘친구’ 사이의 잡담이라며 발뺌을 할 수 있잖은가.

대학 동창 중에서 누가 이렇게 나온다면 징그러울 것 같다.

정준길은 통화 내용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것은 ‘협박’이 아니라 일종의 친구 사이의 조언(?) 비슷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던 차에 택시기사의 증언이 나왔다. “정준길 위원이 당시 전화를 통해 ‘저렇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협박에 가깝게 말했다.” 정준길은 택시 탄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이로써 진실게임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게임은 간단히 끝날 수 있다. 증언에 따르면 “4일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 차가 막히지 않았던 시각, 성수동쯤에서 광진경찰서 부근까지 제 택시를 이용한 사람이 나중에 보니 정준길 위원이었다.” 택시 블랙박스로 운행기록을 확인하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했으니 기지국에 남은 흔적을 확인하면 될 일이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 친구를 잘 사귀자.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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