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17 19:18
수정 : 2012.09.1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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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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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폭탄이 터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부채위기국 채권을 ‘무제한’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의 중앙은행도 3차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월별 목표금액은 있지만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역시 ‘무제한’이다. 말 그대로 양적완화다. 대서양도 덮을 기세다.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걸까. 정말 양적완화는 작동한다고 믿는 걸까. 은행과 자산시장은 살려냈다. 하지만 이들이 양적완화의 최종 목표라고 주장하는 실물경제의 회복은 오히려 암담해지고 있다. 유럽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미국의 실업난도 여전하다. 전세계 어느 나라라 할 것 없이 성장률 저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니 지난 수년에 걸친 이들의 시도는 실패가 분명하다. 사실, 양적완화는 역사적으로도 이미 검증이 끝난 문제다. 일본에서 실패한 수단이다.
양적완화란 개별 은행이 보유한 국채 등 자산을 중앙은행이 사들이는 행위다.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 시중 금리를 끌어내리는 게 목적이다. 이를 통해 은행의 풍부해진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흐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간의 부채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이다. 부채 가격이 싸니 빚을 내 소비와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위 논리가 거의 먹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은행의 현금이 아무리 풍부해도, 시중의 금리가 바닥을 모르고 떨어져도 대출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민간 부문은 부채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아니, 차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미 과도한 부채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제결제은행은 양적완화의 한계를 이미 명확히 하고 있다. “은행의 현금 보유량은 대출 결정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신용의 양은 은행의 대출 공급 의지에 달려 있다. 물론 그 의지는 대출 수요와 은행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에 의해 결정된다.”
돈이 많다고 은행이 대출을 늘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선 대출 수요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돈을 떼일 위험이 작아야 한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중앙은행이 개별 은행의 현금을 늘려줄 수는 있지만 대출을 늘리도록 강제할 순 없다.
이걸 세계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들이 모여 있는 이들 중앙은행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양적완화를 시도하는 건 의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겉으론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임하지만, 뒤로는 그 유발자 노릇을 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자극이 실제로 꾸는 꿈임을 버냉키는 더이상 숨기지 않는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더 소비하려 한다. 가격이 계속 오르면 향후 기대수익 때문에 더 사려 한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자산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늘어난다. 기업 운영의 가장 큰 장애는 충분한 수요의 부족이다. 금융 포지션이 개선된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더 많이 소비하려 할 것이다.”
놀랍지만 세계 최대 중앙은행장의 말이다. 자산시장 부양을 통한 ‘부의 효과’가 이들의 꿈이다. 자산시장이 폭등하면 부자가 된 듯한 느낌에 소비와 투자를 늘릴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경기는 자연스레 회복될 거라 믿는다. 현대 중앙은행이 종종 써온 방식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언제나 일시적이었다. 실물경제의 뒷받침이 없는 자산시장의 공중부양은 그 끝이 뻔했다. 2000년이 그랬고, 2007년도 마찬가지였다. 버블화된 자산시장이 현실을 따라 추락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양적완화를 통한 ‘부의 효과’론 결코 경기 회복을 이끌어낼 수 없다. 자산시장의 고공행진이 실물경제를 부양할 수는 없다. 설사 돈으로 대서양을 덮는다 해도 말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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