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19 19:24
수정 : 2012.09.1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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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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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유난히 너그러운 내 선배는 그것이 필경 유신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터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노란색 머리로 물들여 보리라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니까.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경찰 단속에 걸려 장발머리 한가운데에 고속도로가 생겨버린 남학생들, 수치심에 쩔쩔매며 미니스커트 길이를 단속받던 여학생들. 그뿐인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현실부정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던 시절.
1972년 10월 유신헌법의 선포로 시작되어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일단락되기까지 재야 인사들뿐 아니라 유력 측근들까지 의심하여 중앙정보부에 끌고 가 며칠씩 끔찍한 고문을 일삼던 그 시절은 개인 박정희 일가로서도 불행하기 짝이 없는 역사다. 그런데 정리된 줄 알았던 이 역사가 집권당 대선 후보 진영의 비호 발언으로 되살아나는 것일까.
학생폭력 기재를 졸업 후 5년까지 보관하고 이를 취업 및 대학입시에 반영토록 하겠다는 교과부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대서 일선 교육청과 학교에 특별감사를 나온 교과부 감사반이 징계를 하느니 해직당하느니 형사처벌 운운하며 반말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는 보도는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것일까 아연하게 한다.
기관 간에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런데 이를 해소하고 조율하는 방식이 보복성 특별감사 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해가며 점령군처럼 일선 학교의 팔을 비트는 것이라니, 유신스럽지 않은가.
소년원 기록도 개인정보로 보호되는데 그보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학내 폭력 사실을 보관하여 불이익을 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과잉처벌이어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으나 ‘중간삭제 제도’ 등 일선 교육청의 대안은 묵살되었다. 400시간 연속근무로 교과부 보복감사에 맞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일선 학교에 대한 협박과 회유가 “유신시대를 방불케 한다”고 비판했다가 얼마 전 국회 교육과학위원회 간담회에서 여당 의원들의 호통을 들어야 했다. 급기야 경기도교육청 직원들과 교사들이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라”는 노란 항의리본을 달고 교과부 감사에 임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학교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요즘 부쩍 늘어난 절망 범죄 혹은 ‘묻지마 살인’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히 학교와 국가의 기본책무다. 그러나 사회적 분노에 편승하여 처벌강화로 그 기본책무를 모면하려는 것은 자칫 가해자를 희생양 삼는 임기응변이다. 집권 여당이나 그 대선후보 진영에서 내놓는 학교폭력 기록 5년 보관, 화학적 거세, 사형제 폐지 반대 등은 그 효과에 비해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는 우려가 많다.
더욱이 학교폭력 대책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의 영역이다. 인터넷 댓글에서는 “정치인이나 재벌은 툭하면 사면하면서 학생 폭력은 졸업 후 5년씩 기록을 남겨서 보복하느냐”고 묻는다. ‘절망 범죄’의 경우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피의자들의 처지가 열악하기 그지없어서 사건의 가해자인 그들이 실인즉 제대로 된 교육과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는 또다른 피해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주말 유신 40주년을 토론하는 역사학자들의 자리에서 한 노학자는 유신의 모진 고문을 견디며 이나마 민주화를 이루어낸 이들을 기리면서 우리 모두의 부채의식과 공범의식을 준엄하게 요구하였다.
빈부격차는 한없이 벌어지고 대중매체에서는 나날이 호화로운 소비와 욕망을 자극하는 오늘,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폭력과 범죄로 치닫는 이들은 과연 우리의 책임과는 무관한 개인들일까. 잘못을 저지른 개인은 응분의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의 책임까지 개인에게 과잉 전가해서는 문명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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