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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20 19:19 수정 : 2012.09.20 21:24

이창근 쌍용차 해고자

새벽녘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밤새 뒤척이던 잠을 깼다. 시간을 보니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기다리고 있던 경찰서 전화였다. 평소 같았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경찰서 전화가 오늘만큼은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 아빠 실종 신고를 한 지 오늘로 꼬박 일주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이겠지. 잔뜩 기대를 하고 벨소리가 나기 무섭게 잡아채듯 전화기를 들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평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충남 보령경찰서였다. 웅웅거리며 들려오는 전화기 너머로 아이 아빠가 사람을 폭행했다는 경찰관의 말이 들려왔다. 잠적한 지 일주일 동안 대체 아이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왜 세상과 소식을 끊고 사라졌던 것일까.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는 일을 하고 있었다. 부부간 말다툼과 싸움도 더러 했다. 8월13일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아이 아빠인 김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을 나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그는 작년까지는 복직하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던 노조 간부였다. 작년 중반 이후에는 생계를 위해 고물상 일도 했다. 처음 해보는 고물상 일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차츰 집안에 돈을 갖고 들어오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그날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김씨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는 조금 전 남편에게 전화상으로 잦은 술자리를 타박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이 때문에 늦는가 싶어 찜찜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새벽 4시. 남편이 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아내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남편은 외려 성질을 내고 전화를 끊었다. 최근에 이런 경우가 잦았고 술도 많이 먹는 편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사는 것이 빠듯하고 직장에도 나가야 하는 아내는 남편의 속얘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이 짧은 다툼과 통화를 끝으로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평소 전화기 전원을 꺼놓는 사람이 아니라서 의외였지만 무슨 사정이 있는가 싶어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주변에 수소문을 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8월21일 다급한 마음에 결국 실종신고를 냈다.

실종신고를 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은 22일 새벽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대천해수욕장 인근에서 21일 밤에 이유 없이 예순의 어른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사라진 동안 모텔을 전전하며 세상과 하나둘 인연을 끊는 중이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면회 도중 ‘세상을 등지려고 이곳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19일에 차량 한 대를 렌트했던 모양이다. 그걸 보니 동료들의 죽음의 방식이 연상됐다. 벌써 몇 명이 차량 안에서 죽었던가…. 그동안 많이 봐온 방법을 생각한 것일까. 경찰관의 얘기를 종합하면 김씨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폭행했고, 지금도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짐승을 물리치려다 스스로 짐승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파업으로 실형을 살았고 지금도 집행유예 기간인 김씨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김씨는 이 모든 것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일본에선 1980년대부터 ‘길거리의 악마’라는 뜻의 ‘도리마’ 사건이 빈번하다. 2000년 이후 10년간 모두 74건이 발생했다. 2008년 대량 해고 사태가 최고치를 기록했던 해에는 14건이나 일어났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이 한풀이 범죄를 낳는 것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한풀이 범죄가 늘어나는 것은 극단으로 치닫는 비정규직의 양산과 해고가 일상인 사회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지난 20일 쌍용자동차 청문회가 있었고 김씨는 그 회사의 해고자다.

이창근 쌍용차 해고자

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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