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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23 19:21 수정 : 2012.09.23 19:21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대중에 대한 이해가 얕다, 천박하다. 보수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자유주의 그리고 좌파 역시 대중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다. 1980년대부터 대중노선을 말끝마다 내세웠던, 지금 남한 정치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이른바 엔엘(NL)이라는 정파조차 대중에 대한 대상화는 심각하다. 그들의 우스꽝스런 ‘지도’론, 아니 지도자 경배를 보면 드러난다. 또한 민주당 등 자유주의세력이나 진보정당운동 혹은 노동정치 한다는 사람들 다수에서도 그 경향성은 보인다. 그들의 엘리트주의, 그들의 대중에 대한 몰이해, 그들의 대중에 대한 대상화.

사실 지난 4·11 총선에서 범자유주의세력의 패배, 그리고 나아가 진보정당운동의 위기의 근원에는 이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박근혜씨를 지지한다는 대중에 대한 힐난 혹은 공포는 거의 히스테리 수준이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를 등장시킨 것이 왜 ‘경제 문제’였는지 숙고할 기회를 놓쳤고, 그들의 패배와 위기를 대중의 후진적인 민주주의 혹은 계급 의식 수준 탓으로 말한다. 대중이 ‘가치’는 추구하지 않고, ‘빵’만 외친다고 한다. 하지만 빵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빵이 기본이다. 러시아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도 빵이었다. “빵과 전쟁의 종식”, 이 두 가지를 통해서 그들은 민주주의를 급진화시켰다.

“나에겐 꿈이 없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지금까지 살았는데, 꿈이랄 게 뭐 있겠는가. 정치가 내 인생을 바꿔줄 거라는 생각도 안 한다. 한 가지 꿈이 있다면 88살 때 눈감고 자다가 조용히 죽는 게 소원이다. 그리고 지금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다. 못 먹은 지 1년이 됐다. 누가 삼겹살을 사준다면 이번 대선에서 찍어줄 용의가 있다.”(<한겨레> 5월14일치)

자, 여기에 1년 동안 삼겹살을 못 먹은 사람, 그리고 지금 당장 자기에게 삼겹살을 사준다면 그 정치세력을 지지하겠다고 말하는 임대아파트 거주 빈곤층 사람이 있다. 어찌 이 사람을 이해할 텐가. 이들의 의식은 ‘보수적’이다. 근데 이들을 ‘정치적 보수’라 분류하는 게 맞을까. 이들이야말로 진보 대 보수의 틀 너머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특별히 보수가 되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보수가 뭔지 정확히 모른다. 반면 ‘진보’는 그들에게 너무나 먼 존재다. 이미 있는 것 자체가 ‘보수’라면, 새로운 것은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가 만들어서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아니, 그래야 정립하고 생존하고 나아가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

그러니 선거 때마다 대중의 정치의식과 몰계급투표를 운운하기 전에, 당신들의 정치의식과 당신들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문제삼고, 당신들이 과연 세상을 계급적으로 해석하고나 있는지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강남의 부자들이 이른바 ‘계급투표’라는 것을 하는 이유는 지킬 만한 계급의 이익이 있고, 나아가 그 계급의 이익을 실제로 향유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반면 이들 빈곤층에겐 향유할 그들 계급의 이익이 없다는 것,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신들이 싸우거나 혹은 투표하거나 해서 쥘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

그렇다면 소위 진보 및 좌파정치가 겨냥할 곳이 어딘가, 이도 분명해진다. 비어 있는 곳은 거기다. 그러니 대중과 함께한다는 미사여구 이전에, 대중을 똑똑히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정식화하고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어렵다는 ‘민중의 호민관’이 되는 길이다. 그다음은 다 비슷하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차이이다. 즉 누가 이 ‘차이’를 세우는가. 누가 대중을 두고 다름을 세울 수 있는가, 즉 대안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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