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24 19:21
수정 : 2012.09.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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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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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인생이 왜 이리도 씁니까?”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을 열어볼 때마다 가슴 아픈 메시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누구나 한두 번은 크게 좌절하고 상처입고 우울해하고 내팽개쳐진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데 어떻게 나를 알게 되어 글로써 에스오에스를 친다. “스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지금 너무 급해요.” 마치 아이가 절규하는 듯한 메시지를 접할 때마다 얼마나 힘들면 생면부지인 내게 이런 글을 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에서 느껴지는 상처의 흔적들은 무척이나 생생한 날것 그 자체다. “절망이 너무 크다 보니 혼자 허우적대며 못 나오고 있어요. 죽을 것 같아요.”
이런 글을 대할 때면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분들의 고통이 너무도 생생히 느껴져서, 그리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고작 몇 줄의 짧은 답신이라서 더 그렇다. 그리고 때론 너무 많은 분들이 다양한 창구를 통해 한꺼번에 도움을 요청해 오셔서 답신조차 할 수가 없는 때도 많다. 나도 내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 삶을 멈추고 종일 답신만 보내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선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정말 마지막 창구로서 나를 간절히 찾으신 것 같은데 나마저 외면을 하면 그분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너무도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그래서 그분들께 이 지면을 통해 전하고픈 조언이 있다. 먼저 살아가며 받게 되는 여러 상처의 치유는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지 않고 따뜻한 자비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마음속 상처를 억누르거나 도망가려 하기보다 마치 예전에 알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상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놀랍게도 스스로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상처의 힘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저항을 하면 그 상처의 힘은 저항하는 동안 지속되고 더 나빠진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불안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계속 저항하면 공황장애로 전이가 된다. 슬픔을 억누르고 저항하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상처로 인해 힘들어하는 현재 내 모습을 자비의 눈길로 온화하게 받아들이면 점점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좌절과 실망, 슬픔을 완전히 없애서 생긴 변화가 아니라 그것들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원숭이처럼 불안으로 날뛰던 마음이 고요해지며 얻게 되는 평화다.
일단 자비한 마음으로 마음속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다음으로 그 상처가 몸 안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속 깊은 상처는 심리적 상태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반응으로 밀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슬픔이나 절망, 우울이 도대체 몸 어디에서 가장 많이 느껴지는지 한번 유심히 관찰해 보시길 바란다. 예를 들어 슬픔이 가슴 쪽에서 가장 많이 느껴지면 가슴 쪽에 손을 대고 어루만져 주면서 “나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힘들어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과 같은 따스한 기도를 같이 해주면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상처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절대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내 편이 되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아 아프다고 말해보자. 참 희한하게도 우리는 힘든 것을 참지 않고 말로 표현을 하면 그 힘든 것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말을 하는 가운데 그 상처들이 객관화되어 내 것이라고 여겼던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힘들어하는 지인을 보면 그 사람 편이 되어 잘 들어주자. 그의 말을 경청만 해주어도 상처받은 이는 엄청난 위로와 희망을 얻게 된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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