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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25 19:21 수정 : 2012.09.26 15:06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몇 달 사이 발생한 성폭력 범죄와 쏟아지는 각종 사후약방문들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실질적으로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는지의 여부, 신고율과 사회적 인식 변화의 연관성이라는 주제와는 별개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의 근본 원인과 수다스러운 재현 방식에 대해 몇 가지 딴지를 걸고자 한다.

우선, 성범죄는 남성중심적 사회질서, 공사 이분법, 젠더(성) 역할 분리가 공고화된 사회에서 남성성을 실현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통상 남성 중심의 위계사회에서는 지배와 정복, 공적 영역에서의 능력이 남성성과 연관되고 수동성, 취약함, 공적 영역에서의 보조적 위치가 여성성과 결부되기 쉽다.

이런 사회에서는 학벌, 돈, 권력으로 표상되는 능력이 없는 남성들은 물리적 힘으로라도 ‘남성다움’을 증명할 것을 암묵적으로 장려한다. 그러므로 자아와 우리 사회에서 기대되는 성역할이 일치하지 않는 남성일수록 ‘여성화’에 대한 불안과 ‘취약한 여성’의 위치에 고착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증폭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남성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특히 기존의 젠더 질서가 유동한다고 느껴지는 이 시기에 남성성의 불안이라는 집단적 무의식이 ‘여성’을 향해 반동적으로 발현되는 측면이 있다.

둘째, 성범죄는 국가의 실패를 징후적으로 드러낸다. 전지구적 자본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21세기에 국가는 시장의 힘에 대한 규제를 포기하고 말았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했던 지지대가 뜯겨나간 영역은 이제 시장의 일탈행동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으며, 증폭된 사회불안과 붕괴의 결과는 고스란히 개인이 떠안게 된다.

문제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개인이 희생자가 된다는 점이다. 옆에 있는 다른 인간이 경쟁 상대요, 일상이 투쟁의 장인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다. 잔혹하고 극단적인 범죄는 아마도 우리 사회를 향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단 하나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경제정의와 분배질서가 무너진 자리에서 삶을 위해 공포에 떨다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자는 또다른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때 어린이, 여성은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과 결부되어 언제든 접근 가능한 피해자가 되기 쉽다.

범죄를 재구성하는 재현 방식과 각종 사후대책들에는 보수주의로의 회귀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 통상 사회적 불안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전통적·사회적 가치나 질서를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집단을 겨냥해 불안의 원인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불운으로 극대화되는 피해자의 상황에 대비되는 가해자의 ‘극악한’ 악행은 알 권리라는 명목으로 낱낱이 공개된다. 이들은 ‘악마’이거나 ‘환자’다. 그러므로 원인은 ‘인류의 본성에 내재한 악/죄’이거나 고환, 뇌, 호르몬이다. 치유책은 “성령의 도움을 받거나,” 화학적 거세 등 치료를 받거나, 물리적 거세나 사형을 통한 영구 제거와 완전 격리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뿔 달린 괴물’을 창조함으로써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한 자아정체감의 재구성인가, 가족적 가치의 환기인가? 이로써 엠비정권하에서 파생된 수많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우리는 그간의 분노와 절망을 또다른 종별적 타자를 향해 배설할 뿐이다. 이 가운데 기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질서, 젠더 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 가족 이데올로기는 흔들림 없는 위치를 재확인한다. 보수주의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이것이 불현듯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성범죄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출발점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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