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05 19:15
수정 : 2012.11.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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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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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요즘 강조하고 있듯이, 현대에 들어 국가나 기업을 이끄는 최고위직에 올라선 여성들이 점차 늘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나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남성 지도자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2008년에 세계 최고지도자들의 성별을 조사한 결과, 겨우 7%만이 여성이었다. 같은 해에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여성이 최고경영자인 기업은 2%에 불과했다.
물론 남성 지도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 남성이 여성보다 항상 더 ‘좋은’ 지도자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좋은’ 지도자란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매끄럽게 조정하는 한편, 재난이나 타 집단의 침략 같은 외부의 위협에 집단이 잘 대처하게 하는 지도자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도자감을 고를 때 누군가 지도자의 이런 바람직한 자질을 지녔음을 알려주는 단서들에 끌리게끔 진화하였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라면 키가 크고, 건강하고, 나이 들고, 결단력 있고, 너그럽고, 외모도 좋고, 공정한 인물을 흔히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누구도 아둔하고, 신경질적이고, 무책임한 십대 청소년을 대통령으로 연상하지는 않는다.
대통령 후보의 성별은 유권자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까? 언뜻 생각하면 유권자가 선호하는 성은 남성 아니면 여성,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모두 틀렸다.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이다. 진화론이라면 덮어놓고 유전적 숙명론의 올가미를 씌우는 세간의 눈초리와 달리, 진화적 관점은 우리가 어떠한 환경적 요소에 반응해 신축적으로 행동하게끔 자연선택을 통해 잘 다듬어졌는지 알려준다.
네덜란드의 진화심리학자 마르크 판퓌흐트는 최근 출간된 저서 <빅맨>에서 다음 가설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풍족한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집단 내 갈등이 심할 때는 여성 지도자를 선호하지만, 세계 경제가 불황이거나 전쟁 때처럼 집단 간의 경쟁이 심할 때는 남성 지도자를 선호할 것이다. 이 가설은 남녀 심리의 진화적 차이에서 근거한다. 수백만년의 진화 역사를 통해서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자녀를 성공적으로 길러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남성보다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게 되었다. 반면에 남성은 짝짓기 기회를 되도록 늘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다른 집단과의 전투나 자연재해 같은 위협이 닥쳤을 때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지게 되었다.
요컨대 집단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서 구성원 전체의 안위가 경각에 달린 상황일수록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남성 지도자가 선호될 것이다. 반면에 자원은 이미 풍족한 상태이고 집단 구성원들 간의 화목한 관계 유지와 갈등 조정이 더 중요한 상황일수록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여성 지도자가 선호될 것이다. 판퓌흐트는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과연 예측대로 행동함을 입증했다. 또다른 연구진이 행한 연구에서는 가상의 남녀 대선 후보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미국 경제가 ‘튼튼하고 번영하는 상황’에 비하여 경제가 ‘허약하고 침체에 빠져드는 상황’에서는 가상의 남성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남녀 모두 더 올라갔다.
국내 경제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세계 경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강력하고 과감한 남성적 리더십을 가진 후보임을 역설해야 할 판국에, 오히려 박 후보가 섬세하고 부드러운 전형적인 여성 후보임을 열심히 홍보하는 새누리당의 선거 전략은 자못 별스럽다. 야권은 상대방이 자책골을 넣겠다는데 굳이 말리지 않길 바란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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