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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12 19:16 수정 : 2012.11.12 19:16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수능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대구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매우 참담한 풍경’이라고 적었던 한 삼수생이 투신자살을 했다.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일을 나간 사이 불이 난 집에서 장애인인 남동생을 구하려던 누나가 열흘 정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같은 날 사망했다. 그에 앞서 9월15일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이아무개씨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이 어려울 것 같다고 비관하다가 자살을 했다.

죽은 남매의 부모는 “못난 부모를 만나…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고 오열했다. 아마 자신의 참담한 처지를 비관한 청년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도 모두 자신에게 내려진 가혹한 ‘형벌’을 견딜 수 없어서 희망을 접었을 것이다. 점수를 못 얻은 것도 개인이 못난 탓, 아이들을 불에 타 죽게 만든 것도 못 배우고 가난한 부모 탓, 비정규직으로 10년을 일해온 것도 자기 탓, 삼성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걸려 죽은 것도 개인 부주의나 운수 탓, 대학 강사 10년 해도 교수 못 되는 것도 ‘실력 부족’이라는 무서운 판결 앞에 우리 사회의 ‘무능한 자’들은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사회는 개인책임, 가족책임의 논리로 움직여왔고, 그 바탕에는 승자독식의 제도, 경쟁 출세주의 교육제도와 시장주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그 논리는 더 강화되었고, 이명박 정부 들어 기승을 부렸다. 이명박 정부는 전국의 학생들과 교사들을 ‘실력 쌓기’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2012년 서울대 입학생 분포를 보면 이 ‘실력’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울대 입학생의 65.7%가 15개 특목고와 강남 3구 출신이며, 서울의 구별 평균 입학생 수는 구청별 소득 혹은 아파트 가격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실력’이라는 것은 사실상 부모의 학력과 재력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배경’이나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의 전폭 지원 덕분에 출세를 한 사람들은 정작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못난 동생들이 겪는 고통과 불행을 당사자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무리한 외자 차입으로 국가를 부도로 몰아간 일부 대기업과 은행은 막대한 공적자금을 받아 회생하였지만, 자신이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자랑한다. 저축은행 부도로 수만명의 소액예금자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 돈으로 잔치를 벌인 금융기관 감독기관 고위직, 정치인들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국민 세금으로 예금자 보상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실력 없고 돈 없는 개인에게는 무한책임과 가혹한 처벌을, 실력을 갖춘 강자에게는 책임 면제와 사면이라는 선물을 주어온 것이 한국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낡은 논리와 시스템으로는 국가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지고 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라는 사실이 과연 한국이 오이시디 국가 중 최저의 공공지출 국가라는 점과 무관한 것일까? 더구나 1인 가구가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시대에 가족책임 논리가 먹힐 수 있을까?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도 개인의 책임을 앞세운 롬니에게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 오바마가 승리했다. 중국에서도 ‘공평’이 시진핑 시대의 최대 화두로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다가오는 우리 대선의 시대적 화두 역시 지난 반세기 동안의 개인책임, 가족책임론에서 ‘정의’에 기초한 공공책임론으로 어떻게 이행해갈 것인지의 문제로 집약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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