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4 19:21
수정 : 2012.11.1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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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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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병참기지였던 인천의 만석동이 주거지가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에서 피난 온 어민들이 판자와 루핑으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고부터다. 그 뒤 60~70년대부터 충청도·전라도에서 올라온 이농민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 속의 섬이 되었지만 만석동은 언론과 공무원들이 쓰는 ‘쪽방촌’이 아닌 도시빈민들의 오랜 주거지역이다.
그 만석동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혼합형 도시재개발지구로 선정되었다. 인천시와 동구의 계획은 원주민 100% 재정착을 목표로 국비와 시비 120억원가량을 들여 15%의 지역에 영구임대주택 70가구와 국민임대주택 28가구를 짓고, 나머지 85%는 현재 마을 상태를 살린 현지개량 방식으로 재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폭압적인 전면재개발 정책에 비해 진일보한 재개발 방식이었다. 주민의 현실에 맞지 않는 계획은 전문가들과 공무원, 지역 활동가, 주민대표로 구성된 지역협의체에서 논의하고 고쳐나가면 될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만석동은 이미 90년대 중반에 현지개량식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가 되어 일부가 공동주택지구로 재개발되었다. 그러나 영세건설업체가 들어와 부실공사를 하는 바람에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슬럼화되고 말았다. 이번 재개발은 그때와는 다를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관료주의와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와 구는 협의체와 주민의 의견은 무시한 채 자신들의 계획대로 임대주택과 공동화장실, 공동작업장, 사회적 기업 유치 따위의 몇몇 사업을 중심으로 재개발을 추진했다. 언론에다가는 “괭이부리마을의 도시재생사업 방향은 주민과 각계 전문가로 구성중인 주민협의체에서 결정하고 인천시는 지원만 하게 된다”고 홍보를 해댔지만 만석동 재개발의 현실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랐다.
도시개발과 도시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주거환경개선사업에서는 주민들 스스로 대표회의를 구성하게 되어 있다. 주민대표는 주민 스스로 구성하여 재개발지역 내 토지와 주택 소유자 50%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동구청에서는 그 주민대표를 자신들이 임의로 선택한 몇몇 주민과 통장을 중심으로 구성한 뒤, ‘사회적 기업 설명회’에서 참석자에게 동의서를 돌려 서명을 하게 하였다. 당연히 서명을 한 주민들은 그 동의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몰랐다.
게다가 그렇게 뽑힌 주민대표자들은 자신들이 재개발사업에 관한 주민대표가 아니라 사회적 기업의 운영 대표라고 알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역주민의 자활을 돕기 위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세워지는 사회적 기업은 만석동 재개발사업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기업의 진행과정 역시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만 하는데 그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60년 역사를 가진 만석동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려 한다면 70대가 넘은 원주민들의 재정착률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삶의 자리를 일궈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을공동체의 복원은 공동화장실을 만들고, 작업장을 만들고, 사회적 기업을 세우고, 벽화를 그리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석동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과정을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미천하고 허술한지를 깨닫게 된다. 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마을의 주인은 주민이다. 나라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는 일에서 주체가 배제된다면 국가공동체건 마을공동체건 존재할 수 없다. 참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주민들의 삶의 자리를 복원하는 일, 그 실험이 인천의 작은 동네 만석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김중미 작가가 김윤자 한신대 교수의 뒤를 이어 필자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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