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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19 19:37 수정 : 2012.11.19 20:27

윤석천 경제평론가

일본의 국가부채 문제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1980년대 중반 국내총생산의 50%였던 게 현재는 200%를 넘는다. 평범한 국가였다면 벌써 부도가 났을 거다. 새삼 일본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과거 일본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러니 그 결과도 거의 같을 거란 추론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초 일본이 겪었던 부동산 거품과 폭발 그리고 이어지는 은행의 실패가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데 그 처방까지 비슷하다. 지속적 저금리와 그도 모자라 돈을 퍼붓는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은 사실 ‘메이드 인 재팬’ 제품이다. 모두 부채 확대 정책이다. 하나 실패한 정책이다. 부채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 경제가 이를 웅변한다. 그럼에도 세계는 귀신에 홀린 듯 너도나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대의정치 체제의 한계다. 대중정치인은 대부분 생색내기를 좋아한다. 빚을 내서라도 펑펑 쓰는 걸 마다할 정치인은 몇 되지 않는다. 그러니 부채가 불어나는 건 순간이다.

우리는 일본과 다를까? 아마 그 못지않을 거다. 참 많이도 닮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고 있고 일부 은행의 위기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저출산/고령화의 속도 역시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성장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세수가 급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복지 수요는 늘기만 한다. 자칫 한눈이라도 파는 날이면 일본처럼 부채에 짓눌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번 불어난 국가부채를 줄이는 건 힘들다. 세수를 늘리는 방법 외엔 없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다. 급성장을 하지 않는 이상 증세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런데 증세는 보통 정권의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로 힘든 과업이다. 일본과 미국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재정절벽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증세에 난항을 겪고 있고, 일본도 1989년 소비세가 도입된 지 근 20년 만에야 겨우 그 인상안에 여야가 합의를 했다.

한데 한국의 대선 주자들은 참으로 한가하다. 써야 할 곳만 잔뜩 늘어놓고 그 돈을 어떻게 구할지에 대한 답은 거의 없다. 누구도 증세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감세안까지 들먹이기도 한다. 사실 감세나 면세만큼 인심 얻기 좋은 정책은 없다. 하나 이들은 달콤한 독일 뿐이다. 언제든 국가를 망가뜨릴 수 있다.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져야 한다. 공화국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살림은 개별 국민의 몫이어야 한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가난해도 소득이 있다면 일단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다시 환급을 해주거나 그 몇 배 혹은 그 이상의 복지를 공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는 분명 형평성에 위배된다. 누구는 내고 누구는 안 내는 구조는 언제든 내는 쪽의 불만을 불러올 수 있다. 더 나아가 감세나 탈세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내는 것과 애초 내지 않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나중에 돌려받는다 해도 조금이라도 낸 사람의 자존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때에야 비로소 복지가 혜택이나 시혜가 아닌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가 된다. 그게 진정한 복지국가다.

일본은 반면교사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부채가 늘어나는 건 순간이다. 복지를 늘리되 반드시 세수를 고려해야 한다. 늘어나는 복지수요만큼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 부자 증세는 물론이고 기존의 면세 체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왜 납세가 의무여야 하는지를 돌아볼 때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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