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6 19:16
수정 : 2012.11.2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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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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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감은 강력한 정서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혐오가 인간의 여섯가지 보편적인 정서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 코를 찡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윗입술을 올리는 표정은 어느 문화권에서 혐오감을 나타낸다고 받아들여진다.
혐오를 뜻하는 영어 disgust(디스거스트)는 ‘맛이 없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실제로 혐오감은 먹는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다윈은 역겨워하는 표정이 미간을 찌푸려서 냄새를 피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어 나쁜 음식물을 거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였다.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송구스럽지만 대개 배설물, 체액, 바퀴벌레, 화장실, 쥐, 토사물, 상한 고기 등이 혐오감을 일으키는 원천이다. 이들은 모두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체이다. 따라서 혐오감은 전염병을 피하게끔 진화된 심리적 적응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진 괜찮다. 문제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서도 ‘혐오스럽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한 검사는 ‘역겹다’. 추징금 1672억원은 내지 않은 채 수차례 외국여행을 다니는 전직 대통령은 ‘구역질이 난다’. 대선 후보 티브이 토론회에서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하는 발언을 들으면 ‘속이 뒤집어진다’. 왜 어떤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냉철히 판단하는 작업에 지극히 원초적인 정서인 혐오감이 불쑥 끼어드는 것일까?
도덕 판단에서 언급되는 혐오는 단순히 은유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가 새로운 지식에 ‘목이 마른다’거나, 걸핏하면 고장나는 컴퓨터가 ‘신물이 난다’고 종종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설명은 틀렸다. 최근의 수많은 연구는 사기나 학대 같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접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곰팡이가 핀 식빵 같은 불결한 물질을 볼 때 느끼는 바로 그 감정임을 보여준다. 두 경우 모두에 대해서, 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되며 같은 얼굴 근육들이 동원되어 역겨워하는 표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우리가 강간범이나 연쇄살인자를 가리켜 ‘혐오스럽다’고 할 때 이는 그냥 은유가 아니다. 정말로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생리적인 혐오를 경험한다는 뜻이다.
도덕 판단이 냉정한 합리적 이성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혐오 정서에서 상당 부분 유래한다는 증거들이 있다. 한 연구에서는 방귀 냄새를 내는 분무기를 미리 잔뜩 뿌려놓은 다음에 실험 참여자들에게 길에서 주운 지갑을 슬쩍 챙기는 행동, 이력서를 허위로 기재하는 행동 등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아무 냄새가 없을 때 응답한 사람들보다 구린내가 진동할 때 응답한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행동을 더 가혹하게 단죄하였다. 마찬가지로, 쓰레기가 넘쳐나는 지저분한 방에서 설문지를 작성한 사람들은 깨끗한 방에서 작성한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도덕 판단을 내린다.
많은 문화권에서 청결한 신체를 도덕적·영적인 순결과 동일시하며, 불결한 육체를 도덕적 타락과 동일시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예배 전에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깨끗한 물로 세례를 받으면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본다. 심지어 전직 폭력배도 잘못을 뉘우쳤다고 고백할 때 “저, 이제 손 씻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왜 신체적인 혐오가 어떤 행동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을 더 엄격하게 만드는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눈을 가린 채 왼손에는 칼,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가 내리는 판결이 그의 합리적인 이성보다는 혐오감·분노 같은 도덕 정서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것은 적어도 분명해 보인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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