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10 19:26
수정 : 2012.12.1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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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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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무게가 없는 게 다행이다. 요즘같이 말이 넘쳐나서야 그 무게를 한반도가 견뎌낼 것 같지 않아서다. 정치인들이 내뱉는 단어마다 하나같이 엄중하다. 정의, 복지, 민생, 경제민주화 등등. 한데 그 무거운 단어들을 너무 쉽게 토해낸다. 그게 단순한 정치적 재주가 아니길 빈다. 왜 말이 ‘빚’이 될 수 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했을 거라 믿고 싶다.
하나, 이런 믿음은 참혹하게 부서지기 일쑤다. 요순시대의 이상국가 건설을, 그것도 5년 만에 해내겠다고 장담하는 걸 보면 아무리 정치가 선전이라지만 너무한다 싶다. 이에 더해 실체가 모호한 단어로 현실을 호도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그 대표적인 게 박근혜 후보의 ‘중산층 70% 복원’ 공약이다. 핵심 공약임이 분명한데 너무나 아리송하다. 박 후보가 말하는 중산층이 뭘 말하는지 모호하다. 사전적 의미의 중산층인지 특정 기준을 차용한 건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사실 ‘중산층이 누구다’ 하고 확실하게 구분하는 잣대는 없다. 제시하는 기관,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때문에 공적으로 ‘중산층’을 언급할 때는 그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서 부러 찾아봤다. 그런데 정말 불친절했다. 설명 혹은 해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트위터에 적시한 링크를 따라가 보니,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내놓은 논평으로 연결된다.
“통계청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중산층은 소득분배를 바탕으로 중간 4~7분위(총 10분위 기준)에 해당한다. 1인당 연봉 4000만~6000만원이면 중산층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읽고 보니 더욱 헛갈린다. 이 기준이 확실하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중산층 70%는 불가능하다. 4~7분위의 비율은 40%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봉 5000만원씩이나 받는 국민의 수를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건 공약이 아니라 허풍에 가깝다. 뭔가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짜증이 났지만 더 조사를 해 유추해낼 수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산층은 중위소득(총 가구의 소득순위 중 가운데를 차지하는 가구의 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말한다. 150% 이상은 상류층, 50% 이하가 하류층이다. 이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중산층은 1995년에 75.3%, 2011년에 67.7%였다. ‘70% 복원’이라 했으니 박 후보의 공약은 이 틀에 맞춘 게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중위소득이란 상대적 개념이다. 절댓값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평균소득은 낮아도 중위값에 근접한 가구수가 많으면 중산층 비율은 높아진다. 반대로 평균소득이 높아도 중위값에 몰려 있는 가구수가 적으면 중산층 비율은 낮게 나온다. 한마디로, 하향평준화만 시켜도 중산층 비율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게 90년대의 중산층 비율이 현재보다 높게 나오는 이유다. 그러니 ‘중산층 70% 복원’이란 공약은 자칫 사기가 될 수 있다. 이 공약이 진정한 의미의 약속이 되려면 목표 중위값 수준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적어도 현재의 소득 중위값을 유지시키며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없다. 두루뭉술할 뿐 명확하지 않다. 이게 핵심 공약의 현주소다.
공약 대부분은 눈부시고 달콤하다. 너무 부셔 눈을 멀게 하고 지나치게 달콤해 귀를 먹게 한다. 이는 정치가 아니다. 선동일 뿐이다. 죽음의 순간까지 말빚을 두려워한 사람도 있다. 왜 스님들이 스스로 말문을 닫고 깊은 침묵에 들어가는 걸 수행이라 하는지, 최소한 그 의미는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말빚’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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