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11 19:19
수정 : 2012.12.1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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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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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1주일 남았다. 이번 대선은 단지 박근혜와 문재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대결이 아니다. 이 선거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거대한 두 힘의 정면대결이다. 한편에선 전쟁과 보릿고개, 독재와 산업화의 기억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사회세력이 먼 미래까지 가지려 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민주화 세력과 정보사회, 포스트산업사회의 젊은이들이 나라의 미래를 다시 건축하려 한다.
이 대결의 승부는 1970년대와 2000년대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중 어느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층은 박정희 시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반북반공, 권위주의, 성장주의 체제를 지켜줄 지도층을 절대적으로 신임해줌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지탱한다. 반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층은 자유롭게 표출하고 서로 결속하여 집단권력을 창출하는 스마트 시민들이다. 2000년대 한국 정치는 양자의 힘겨루기에 의해 규정되어왔다.
2002년 참여정부의 탄생 과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이때 노무현 개인의 카리스마보다 더 의미심장했던 것은 바로 촛불집회, 노사모, 희망돼지라는 새로운 사회적 에너지였다. 2007년 대선은 그 힘의 일시적 소진을 드러냈다. 이명박 후보의 유효득표율은 2002년 노무현 후보보다 적었지만 그는 정동영 후보에게 압승했다. 청년층과 개혁 성향 시민들의 냉랭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는 권력 지도를 다시 바꿔놨다. 2008년에 탄생하고 결집된 촛불시민들의 힘이었다.
활동적 시민사회의 정치적 힘은 세계 곳곳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2009년 1월, 세계 경제위기 속에 부도국가로 전락한 아이슬란드는 의회 조기선거를 치렀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시민들은 대자본과 결탁한 보수 권력을 무너뜨리고 사회민주주의 정권을 세웠다. 2012년 11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거센 공격을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이 풀뿌리 보수 ‘티파티’ 운동의 기세를 꺾고 미국 사회의 여론지형을 완전히 재편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마그마가 제도정치로 흘러들어가지 않으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2011년 5월에 시작된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의 운동’은 경제정의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지구적 네트워크로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강한 반정치 성향은 사회당을 초토화시켰고, 선거에 대한 이들의 무관심 덕분에 보수 국민당은 과거와 다르지 않은 득표율로 권력을 다 가져갔다. 투기은행의 횡포, 복지예산 삭감, 최악의 청년실업, 가공할 가계부채, 길거리의 파산자들, 이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최근 추세는 21세기 선거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힘이 바로 개혁 성향 유권자들, 특히 정보사회에서 성장하고 단련된 젊은 세대의 정치적 활동성 여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이 커지고 활발해지는 만큼 보수의 성은 작아진다. 이들이 확신과 열정을 상실하는 만큼 보수의 성은 커진다. 이 상대적 힘의 균형이 권력의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한다.
12월19일까지 1주일이다. 이 최후의 7일이 앞으로 5년, 아니 그 이상의 긴 미래 동안 우리의 밥과 존엄을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승부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역사의 역진, 사회적 퇴행을 원하지 않는 모든 시민들의 활동성 여부다. 1인이 10인에게, 10인이 다시 10인에게 열망과 낙관과 행동을 전파하는 확산의 다이내믹이 최후의 7일을 점령할 때, 역사는 우리 사회의 미래 세대에게 문을 열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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