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0 02:23
수정 : 2012.12.20 08:57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
1987년 이후 여섯 번째 맞는 대선 이튿날 아침이다. 이날은 항상 ‘질 수도 없고, 져서도 안 되는 싸움’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사람들은 가슴이 뻥 뚫리고, 역사적 승리를 맛본 사람들은 기대와 환호로 부푼다.
그런데 1~2년이 지나면 대통령을 안 찍은 쪽이 기세등등해지고, 찍은 쪽은 침묵한다. 3~4년 지나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부지기수가 된다. 나도 20대에는 두 번의 충격적 패배를 맛봤고, 30대에는 두 번에 걸쳐 승리의 감격을 맛봤다. 불혹의 나이에 아직 도달하지 못해서인지, 승리했을 때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패배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비탄에 잠겼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수구냉전세력이 기승을 부려 툭하면 잡혀가고, 도망 다니고, 쫓겨나는 세월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대한민국도 내 인생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날(2월25일) 위장취업 혐의로 구속되어 초여름까지 구금되어 있었는데, 스물다섯 시퍼런 청춘이었지만 암울한 생각에 눌려 지내다 보니 갖가지 병마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제 오십을 목전에 두고 뒤돌아보니,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관한 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타고 있었다. 국회 의석수, 득표차, 재계·종교계·언론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1987년 이후 최강의 대통령이 이명박이었지만, 결코 무소불위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정선거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아랍국가들을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투개표 부정도, 공무원 조직 전체를 동원하는 관권선거도, 돈봉투가 난무하는 금권선거도 먼 나라 얘기가 되었다. 거의 무한대의 언론 자유도 누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87년 체제는 독재 방지에는 매우 효과적인 체제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양극화 해소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 체제는 세계화, 자유화, 중국의 부상, 지식정보화 등과 맞물려 혁신 능력이 있는 기업이거나, 지식정보가 있거나, 단결력이나 로비력이 있거나, 권력(규제·처벌·재정할당권)이 있는 존재들에게 부와 기회를 과도하게 쏠리게 하였다. 경제활동인구의 20%를 넘지 않는 해외(수출) 부문과 국가(규제) 부문에 부와 기회가 집중되도록 했다. 전자는 재벌대기업과 울산, 거제, 포항, 창원 등 수출·대기업 도시다. 후자는 국가가 수량과 업역을 정하는 변호사 등 ‘사’자 직업과 철저한 규제 산업인 금융산업, 수도권 등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자와 노조는 주로 이 두 부문·지역에 올라타 있다. 국가 부문은 학위·시험 사다리 외에는 진입 방법이 없다.
요컨대 지금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국가라는 성벽을 가진 20%의 성안 사람과 중국발 충격, 시장경쟁에 완전히 노출된 80%의 성밖 사람으로 양분되어 있다. 20~30대는 주로 성밖 사람일 수밖에! 그런데 정치는 잘 조직된 성안 사람의 이해와 요구를 주로 반영하였다. 공공부문 및 대기업의 비정규직 일부와 학위·시험 사다리의 승자를 성안에 조금 넣어주는 정도였다. 이것이 대선 승리의 기대와 환호가 얼마 안 가서 비난과 비탄으로 바뀌고, 집권세력의 죽음(폐족)과 부활의 주기가 점점 짧아진 이유다.
그런데 이번 대선판도 1987년 체제의 이 짙은 그늘을 치유할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1987년 이후 지겹게 보아온 다람쥐 쳇바퀴가 6번째 주기를 시작하는 날인지도 모른다. 집권세력의 오만은 이를 더 단축시킬 것이다. 대한민국은 집권세력의 도살장이다. 실망과 환호는 일주일이면 족하다. 성밖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대호 사회디지안연구소 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