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7 19:21
수정 : 2013.01.0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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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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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같은 반 친구들에게 계속 시달렸던 대구의 한 중학생이 아파트 창문에서 몸을 던졌다. 이후 학교폭력 근절은 일자리나 물가 등을 제치고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선포되었다. 박근혜 당선인도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4대 악의 하나로 학교폭력을 꼽으며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게 다 이명박 정부 탓이라고 분노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교폭력이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만 급증한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 사이에 강자가 약자를 지속적으로 해코지하는 행동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서 관찰된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북극의 이누이트족이나 아마존의 야노마미족에서도 아이들은 또래를 괴롭힌다. 고대 중국과 그리스, 중세 유럽에서도 학교폭력은 흔했다.
학교폭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연구자들은 매년 전세계 청소년들의 10%에서 60%가 학교폭력에 시달린다고 추정하고 있다. 무려 1억명에서 6억명의 청소년에 해당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듯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예전에는 학교폭력이 지금보다 오히려 더 심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명랑만화의 주인공들은 종종 친구에게 얻어맞아 주먹만한 혹이 머리 위에 불쑥 솟아난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학교폭력이 모든 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그것이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아이들만이 저지르는 예외적인 병리현상이라는 기존의 설명에 물음표를 던진다. 학교폭력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적응이다. 다른 영장류의 새끼들처럼, 아이들은 또래 집단 내에서 자신의 힘, 지능, 운동능력, 용감함 등을 친구들에게 과시함으로써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자 한다. 우열 순위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어떤 아이들은 자신보다 명백히 약한 친구를 골라서 매일 되풀이해서 괴롭히는 방안을 택한다. 학교폭력은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끈덕지게 괴롭힐 만큼 강하고 억센 사람임을 널리 광고하여 결국 또래 집단 내에서 가해 학생의 지위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가해 학생들이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등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학생일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실제로 여러 연구는 진화적 설명을 뒷받침한다. 가해 학생들은 대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아주 건강하며, 피해 학생들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며, 반 친구들이나 교사에게 인기도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본다면, 가해 학생들이 왜 학교폭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가해 학생들에 대한 일벌백계만 강조하는 것은 효과적인 예방책이 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가해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이득은 그대로 놔둔 채 “들키면 크게 혼난다”고 엄포를 놓는 격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더 교묘하게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만 늘기 십상이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진화적인 관점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자 어떤 학생들은 학교폭력이라는 파괴적인 경로를 택한다. 따라서 가정과 학교는 학생들이 같은 목표를 좀더 건설적으로 이루게 해주는 대안 경로를 택하게끔 유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남학생들끼리 경쟁적인 스포츠를 즐길 여건을 충분히 제공한다고 하자. 많은 남학생이 또래에 대한 폭력보다는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자신의 힘과 운동능력, 용감함을 친구들에게 과시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건설적인 방식으로 높이는 길을 택할 것이다. 4대 사회악의 하나를 척결하는 데도 진화 이론에 바탕한 통섭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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