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8 19:21
수정 : 2013.01.0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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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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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많은 사람들의 설왕설래에도 불구하고, 이제 여성들이 여성을 선택했다는 엄중한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여성대통령 시대를 앞두고 우리는 무엇을 성찰하고 경계해야 하는가?
지난 대선은 ‘섹스 코드’의 명백한 승리였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높아지고, 특정 여성이 정치적 공론장에 등장하는 과정을 목도했지만, 시민사회는 여성이 정치적 대표성을 갖는 문제와 여성정책이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지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냥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이어서 안 된다는 옹색한 논리로 일관한 진보진영은 그들이 비판해왔던 결혼과 모성 경험으로 여성 후보를 깎아내리기에 급급했고, 젠더 코드와 섹스 코드의 연관성조차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그사이 오히려 국민들은 여성대통령이 여성을 대변하면서 여성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단순명료한 논리로 진보담론의 내적 모순을 명쾌하게 깨부수었다.
여성대통령의 존재는 몇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다. 우선, 공적 영역에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여성에 대해 남성들이 지니는 존재론적 위협감과 불안감을 일정 부분 해소해 주리라 기대된다.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면 취약함으로 연상되는 여성성과 강인함으로 연상되는 남성성의 이분법을 깨고, 여성성과 전문성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여성이기에 이른바 여성적 영역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전통적 성별분업 논리에 균열을 가하게 될 것이며, 생물학적 성(섹스)이 사회적 역할까지 규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에 교정효과를 줄 것이다. 젠더와 섹스의 자연스런 연관성에 대한 의문이 폭넓은 수준에서 인지되게 되면, 여성정책이 지니는 내적 모순을 교정할 기회 또한 제공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그가 성공하면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그가 실패하면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환원론적 프레임에 갇힐 우려가 있다. 그가 국정운영을 잘한다면 남성의 후광과 지원, 선천적인 계급적 기반이라는 발판이 있어야만 여성은 성공할 수 있다는 기존의 신화를 다시 강화시킬 수도 있다. 반대로 남성들의 무의식적 근저에 깔린 ‘결국 여자니까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언제든 그의 리더십을 폄하할 근거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하여 잘못된 판단과 행동의 원인은 고스란히 여성의 문제로 회귀되고 여성에 대한 집단 비하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정책을 비판하는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논리구도를 타파해야 할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해결책은 단 하나다. 박근혜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섹스 코드를 강조하는 여성 리더십이 아니라 반권위주의적·민주적 리더십을 강조해야 한다.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일정 부분 여성성을 강조함으로써 대중에게 어필했지만 이는 나약함, 취약함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그가 집권 후 강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역으로 과도하게 여성성을 덜어내려 한다면 권위주의적·반민주적인 체제로의 회귀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결국 남성성-전문성의 강고한 연관성을 재확인하게 하고 사회 전반의 반여성화 담론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여성에 대한 보수담론의 복귀는 기실 박근혜 당선인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 중 하나다.
박근혜 당선인이 단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공정한 판단을 한다면 그는 여성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국민은 바로 그런 대통령을 바라고 당선인을 선택했으리라 믿는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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