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13 19:11
수정 : 2013.01.13 19:11
|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이번 대선에서 누가 국민의 선택을 받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선택받았고 문재인 후보는 선택받지 못했다. 그런데 선거는 인기투표와는 달라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겼으니 만세 부르고 끝나는 것이 선거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정책을 선택한 것이고, 그것은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규정할 것이다. 그런데 뜨거웠던 투표참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된 책임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에게 있다.
새누리당은 이번에 선거전이 아닌 광고전을 치렀다. 정치에서 정의라는 관점을 빼버리고 선거 승리를 통한 권력의 쟁취라는 관점만을 극대화시킨 기준으로 본다면 이것은 탁월한 전략이었다. 이명박 정권 5년을 견디면서 대선만 손꼽아 기다려온 수많은 유권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정책 선택의 고비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기득권 편만 들었던 새누리당의 전과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 이슈가 부각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모든 정책 이슈를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전략을 썼다. 파란 한나라당이 빨간 새누리당으로 바뀌더니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바뀌는 것은 정권교체가 되었고, 그것은 곧 시대교체가 되었다. 거리에는 후보의 이름은 빠진 채 새누리당이라는 당명만 들어간 채로(따라서 공약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도 없는 채로) 모든 것을 새누리당이 다 해주겠다는 펼침막이 수없이 펄럭였다. 마침내 의제가 성공적으로 사라지자 침대는 가구가 아니게 되었고, 새누리는 한나라가 아니게 되었으며, 박근혜는 이명박이 아니게 되었다. 탁월한 광고전이었다. 정의의 관점을 빼버리고 승리의 관점만 극대화시킨 광고전의 결과 국민들이 박근혜를 선택한 것은 알겠으나 어떤 정책을 선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인선에서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은 어떤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것은 스스로 집권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었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유권자 균열을 가져올 정책개발 능력도 없었다. 심지어 선거가 끝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그래도 문재인이니까 이 정도 해냈다는 주장조차 등장했다. 문 후보 개인은 훌륭한 사람일 수 있고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상당수는 아직도 그 호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그러한 주장은 정치적으로 몰염치하고 정책적으로 무책임하다. 그가 정책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그중에서 무엇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고 무엇은 선택받지 못했는지, 치밀하게 분석하고 차분하게 반성하며 정치적으로 자숙해야 할 때이다. 이와 관련하여 좌클릭 때문에 중도를 놓쳐서 졌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런 말을 하려면 우선 박근혜의 공약과 문재인의 공약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었는지, 차이점 중에서 지나치게 좌편향된 것은 무엇이었는지, 중도란 구체적으로 어떤 유권자층인지 등을 먼저 분명하게 해야 한다. 두 후보의 공약을 비교해보면 차이는 있을지언정 좌편향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은 찾을 수 없다. 무턱대고 좌클릭 책임론을 말하는 것은 민주당의 정책적 무능을 덮는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고, 이번에 덮으면 다음에 또 질 것이다. 국민들이 문재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알겠는데 어떤 정책이 선택받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2012 대선,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선택한 것인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