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14 19:20
수정 : 2013.01.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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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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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를 두고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공직자로서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 점이 크게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고위 공직자들이 평범한 시민보다 훨씬 더 낮은 윤리의식을 보여준 예가 너무 많아서 별로 놀랍지는 않고, 새롭게 시작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것 같아서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만 갖고 지나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엄중하다.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본 철학과 원칙을 결정하는 기관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내가 헌법재판소의 정치화를 크게 우려하게 된 것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관습헌법’에 의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뒤부터이다. 나는 그 ‘서울이 수도인 것은 관습헌법’이란 결정을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는데, “저곳 사람들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이해가 결정적으로 위협을 받으면 어떤 해괴한 논리라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구나” 생각했다. 성문법이 있는 나라에서, 더구나 지금의 헌정체제와 아무런 연속성이 없는 조선시대에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였다는 관습이 ‘헌법’적 위상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전혀 사리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헌재가 뭐 하는 곳이기에 헌법 해석권을 독점하여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와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일거에 뒤집어버리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선출되지 않는 사법권력은 과거의 군사쿠데타만큼이나 법을 우롱하는 힘을 가진 실체임을 알았다. 헌법재판소가 민주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고, 헌법 해석은 고도의 법률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는 것까지는 받아들이겠는데, 평생을 고시공부와 제한된 학연과 사교범위에서 벗어난 적이 없을뿐더러, 권력의 입김에 순치된 사법관료들만이 그 자리에 갈 자격이 있는지는 아직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냥 대통령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그 수장으로 임명하고 다수당이 통과시키면 끝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짐이 곧 국가’인 흠정헌법의 시대에는 ‘법복귀족’들이 군주의 의중에 따라 판결을 내리겠지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이 민주국가에서 헌법 해석 기관, 특히 그 지휘자는 당연히 대다수 국민의 상식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 임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동흡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 중에서도 가장 국민의 상식과 거리가 먼 입장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친일재산 환수가 위헌이라 했고, 인터넷 선거운동 금지가 합헌이라 했으며, ‘미네르바’를 잡아넣은 전기통신기본법을 합헌이라 했다. 그가, 민족을 배반한 대가로 얻은 재산도 사유재산권 불가침 원칙에 따라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노동자의 쟁의권도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법관 개인으로서 그런 소신을 가질 수는 있지만, 국가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 최상위 1%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처신을 해온 사람이 오직 ‘세습 군주’의 의중만 살피는 법복귀족처럼 되면 99%의 사람은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모든 법이 그러하지만 헌법은 기본적으로 행정권 견제와 인권보장의 정신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헌재 재판관은 인권보호에서 국민에게 내세울 만한 경력과 소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사후매수죄’ 사건을 대선까지 기다렸다가 합헌이라고 결정하는 등 극히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는 이 기관에 기성권력 수호의 방패막이 노릇을 해온 사람이 수장으로 임명된다면 입법부의 역할도 축소될 것이다. 민주당이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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