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4 19:18
수정 : 2013.02.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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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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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21일 한진중공업 노조 회의실에서 최강서씨가 회사 쪽이 노조를 상대로 낸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을 철회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35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돈은 연 1억원에 불과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조합비를 158년 동안 모아야 할 돈이라고 한다. 2003년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바로 이 손해배상 소송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회사 쪽은 노조의 파업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으니 이 방법으로 배상을 받을 수밖에 없노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노조 쪽 변호인은 회사가 과연 이 정도의 손해를 입었는지도 알 수 없고, 설사 손해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노조 탓인지는 입증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현재 <문화방송>(MBC)은 지난해 노조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324억원을 노조에 청구한 상태이고, 쌍용자동차도 노조에 232억원을 청구했다. 회사 쪽이 노조 간부들에게 청구한 금액은 이들의 월급을 30년 이상 모두 갖다 부어도 다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한진중 회사 쪽은 “법적 판단에 맡기자”고 하고, 노동자 시민 1만7000명은 “‘법적 판단’ 잘 내려주십사” 하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법원의 선처에 호소할 일일까?
1870년대 영국에서 형법에 의해 노조 활동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지자 사용자들은 ‘손해를 입히기 위한 공모’ 죄로 노조원들을 고소하여 급기야 조합원들이 자기 집을 파는 일까지 생겼다. 1900년 태프베일 철도회사의 파업에 대해 영국 최고법원은 노조가 비록 법인이 아닐지라도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러한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가 노조를 무력화시킨다는 사실을 자각한 노동자 100만명이 노동당에 가입하였다. 이후 의회는 1906년에 사용자의 불법행위 소송을 막는 법을 통과시켰고, 현재는 노조의 민사상 책임을 인정하나 책임상한액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1920년대 후반 사유재산제를 비판해도 치안유지법을 적용하던 천황제하의 일본에서도 양심적 내무관료는 사용자의 손해배상 소송을 인정하면 노조의 존재가 부정된다는 이유로 사용자 쪽의 손배소송 조항 삽입 요구를 거부한 일이 있었다.
노동자에게 1억원은 법인이나 사용자의 입장으로 치면 100억원 이상의 무게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법원은 부당행위를 한 사용자에게는 그들 하루 저녁 술값도 안 되는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면서, 불법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에는 10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다. 이건 노동자에게 죽으라는 소리나 다를 바 없고 노조 쟁의권을 사실상 부인하는 일이다. 게다가 실제 한국의 노조들이 합법파업을 하는 것은 외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걸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한국의 노동조합법에는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리해고·구조조정 등을 둘러싼 파업은 불법이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
나는 월급이 수백만원도 안 되는 노동자들에게 수백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사쪽의 태도도 문제라고 보지만, 그 엄청난 벌과금을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부과하는 한국 법관들의 정신구조가 의심스럽다. 한국 노동부는 이미 1990년부터 노조의 쟁의에 대해 민사소송의 방법으로 통제하라고 권유하기 시작했는데, 오늘 한국의 노동관료나 판사들은 1900년대 영국, 1920년대 일본의 관료나 판사들보다 더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이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이 노동 3권이 보장된 나라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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