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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12 19:12 수정 : 2013.02.12 21:22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며칠 뒤면 박근혜 정부 시대가 개시된다. 현재 고위직 지명자들의 도덕성 검증, 정부조직 개편과 인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박 당선인의 불통과 독선이 문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가, 새로운 정부조직의 권력구조와 핵심 세력이 어떤 성격을 띠는가라는 큰 방향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다수 국민이 생각하는 제일의 국정과제는 지난 10여년간 심화되어온 격차와 불안을 완화하는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 후보는 야권이 추상적 정치혁신 논쟁과 단일화 갈등으로 허우적대는 동안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의제를 선점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박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복지국가의 꿈을 이루겠다는 약속으로 산업화의 추억과 양극화의 현실을 절묘하게 접붙였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직후에 경제적 격차 해소와 복지국가를 약속했다가, 곧 재벌 중심의 수출주도 산업화 전략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이를 폐기했다. 그리고 이후 10여년 동안 박 정권은 노동인권을 탄압하며 재벌육성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에 몰두했다. 이후 어떤 보수정권도 복지국가와 경제정의 의제를 진지하게 다시 꺼내든 적이 없었다.

한국 보수정치의 주된 국정노선은 재벌 육성을 통한 성장과실의 분배였다. 학계에선 이를 ‘생산주의적 복지’라고 부른다. 그 대표적 구호는 ‘잘살아 보세’와 ‘조국 근대화’였다. ‘잘살아 보세’는 나와 내 가족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을 집약했다. ‘조국 근대화’는 나라의 부강을 뜻했고, 나라의 부강은 재벌의 부강과 떨어질 수 없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국가 주도 산업화와 재벌 육성이 궁극적으로 나와 내 가족의 부를 증진시켜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국에서 공적 복지의 부재는 단지 독재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토대를 갖고 있었고, 그 토대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후에 재벌권력이 강해지고 국가의 규제력이 약해지면서 국가의 부와 개인의 부가 일치하리라는 기대는 희박해졌다. 그런 조건에서 1990년대 이후 김영삼·이명박 정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재벌공화국의 현실을 호도했다. 김영삼 정부는 ‘신한국 창조’, ‘국가경쟁력 강화’, ‘세계일류국가’ 등 국제적·국가적 현실을 빌미로 친기업 정책을 정당화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국민성공시대’라는 구호가 말해주듯이 개인들의 물질적 욕망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데 방점을 뒀다.

이에 비해 박근혜 당선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국가나 개인 수준이 아니라, 개인들 사이, 계층들 사이의 관계에 ‘정의’, ‘공정’, ‘평등’ 같은 윤리적 차원을 도입하는 의제들이다. 이제껏 한국 정치에서 그런 시도를 한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복지강화 사회정책 간의 불일치로 인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이다. 지난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찍은 48%의 유권자들은 그 미완의 기획을 문재인을 통해 지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2년에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가 이번에 박근혜 후보를 찍은 많은 50대들은 한번 실망하고 환멸을 느낀 마음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도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을 움직여 집권했다가 그 마음을 배신하면 똑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새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메우면서 한국 보수정치의 수준을 격상시키고, 이를 통해 그와 경쟁하는 야권정치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길 기대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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