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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17 19:19 수정 : 2013.02.17 21:24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스톡홀름 중심가 슬루센 역에서 살트셰바덴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도심과 숲을 끼고 30분을 달려 열차는 어느덧 바닷가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살트셰바덴역에 정차했다. 열차에서 내려 해안선을 끼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하얀 건물로 들어선다. 100여년 전에 당시 재력가였던 발렌베리 가문이 지은 그랜드호텔이다. 커피숍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75년 전 이곳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1938년 12월20일 스웨덴 중앙노조(LO), 그리고 경영자총연합회(SAF)의 대표들이 2년 동안 끌어왔던 협상안에 서명하기 위해 마주앉았다. 몇 차례나 협상이 깨질 듯한 위기를 넘기고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을 담은 협상문에 양쪽 대표가 서명했다. 이 극적인 타결이 스웨덴을 갈등사회에서 고도경제성장·복지국가로 재탄생시킨 기폭제가 되었다.

1930년대 초까지만 해도 평화적 노사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강경한 노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웨덴 노조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1920년대와 30년대 스웨덴 사회를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웁살라대학 예니 얀손은 <동질성 만들기>란 책에서 스웨덴 노조의 급진적 성향이 온건주의로 급선회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얀손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온건주의자, 신디컬리스트, 마르크시스트로 분열돼 있던 스웨덴 노조의 정체성에 본질적 변화를 일으킨 주된 요인은 바로 자발적 학습운동에 있다고 보았다.

1912년 노동쟁의가 가장 빈번했던 중부도시에 설립된 브룬스비크노동자학교와 노동자교육협회(ABF)가 노조 간부들의 학습과 문학서 독서를 주도했다. 노조가 깨어 있지 않으면 노동운동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보고, 사민당·노동자도서관협회·협동조합·사민당청년위원회가 함께 학습운동을 시작했다. 전국의 각급 노조 간부들이 이 학교들을 거쳐 갔고, 이들은 다시 직장 단위의 셀로 내려가 퇴근 후 학습동아리를 주도했다. 이렇게 시작된 노동자 학습운동은 1920~30년대의 급진적 노동운동을 온건적 개량주의로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이 얀손의 주장이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그리고 독일 등이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 이후 급진적 노동운동을 받아들여 파시즘, 나치즘, 혹은 폭력적 민족주의 운동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스웨덴에서 노조가 평화적 협상주의로 선회하게 된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질적 변화를 주도해간 자체 학습운동이 민주주의적 법과 질서의 존중, 협상을 통한 노동자들의 이익 극대화 전략에 눈을 뜨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얀손은 주장한다.

스웨덴 노조원의 수가 이 기간에 10만명 이하에서 100만명 정도로 기하급수적 증가를 한 배경에는 이런 노조의 질적 변화와 정체성 확보에 따른 회원들의 이익증대 기대 등이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노조와 대화조차 거부했던 경영자 쪽에서 협상 상대로 간주해 노사협상에 임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도 획기적 변화를 위해선 노조의 투쟁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스웨덴처럼 자체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운동과 정체성 찾기 운동을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노조 가입률이 획기적으로 늘 수 있고, 사쪽도 노조가 소수의 대표라고 무시했던 것을 고집할 수 없게 된다. 노동시장 안정, 국제신인도 제고, 해외투자 증가는 덤이다. 여기에 국민의 지지까지 등에 업게 된다. 일석삼조 이상의 효과가 눈에 보인다.

살트셰바덴의 그들처럼, 한국의 노사 대표가 협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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