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2.18 19:24 수정 : 2013.02.18 19:24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어떤 독자는 책을 읽고 괴로운 나머지 사흘 동안 밤잠을 설쳤다. 그런 책을 쓰고서 어떻게 아침마다 태연하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저자에게 묻는 이도 있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내놓은 <이기적 유전자> 말이다. 이 책은 20년 전 국내에 번역된 이래 과학분야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이 책을, 정확히 말하면 책 제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 분야를 전공하다 보니,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가 조종하는 로봇에 불과하다는 말은 헛소리 아니냐고 날 선 질문을 퍼붓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일반인들은 ‘이기적 유전자’를 대개 이렇게 이해한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어서 다음 세대에 더 많이 전파되려 애쓴다. 인간은 유전자가 이 목표를 이루고자 만들어낸 로봇이다. 따라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이론에 따르면 자식이나 배우자, 친구 등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희생도 진정한 이타성이 아니라 유전자가 자기 복제본을 남기려는 이기적 책략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라는 해석은 책의 제1장에 나오는 문장으로 뒷받침된다. “관용과 이타성을 가르치도록 노력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틀렸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먼저 도킨스는 책에서 ‘이기적인 유전자’는 단순한 은유에 불과함을 지겨울 정도로 강조하고 있음을 짚어 두기로 하자. 유전자가 마치 사람처럼 의도를 지닐 수 있다고 도킨스가 착각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사람은 과녁을 크게 벗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은유는 대체 무슨 뜻일까?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자연선택에 의해 다음 세대에 후손을 더 많이 남기는 단위는 개체나 집단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가 마치 자기 후손을 널리 퍼뜨리려 노력하는 실체인 양 가정하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도킨스의 제안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은 추우면 덜덜 떨어서 열을 만들어 체온을 유지한다. 추우면 몸을 떨게 했던 유전자가 다른 대립유전자, 이를테면 아무리 추워도 평정을 유지하게 했던 유전자보다 다음 세대에 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추우면 몸을 덜덜 떨게 하는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오늘날 생명체의 복잡한 적응을 만드는 모든 유전자들은 먼 과거에 그 복제본을 퍼뜨리기에 유리했다는 의미에서 ‘이기적’이다.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진화를 바라보는 이론은, 흔한 오해와 달리,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함임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유전자를 퍼뜨리려 애쓰지 않는다. 유전자의 선택 과정을 어떤 식으로 은유하든지 우리 인간은 사랑, 안전, 행복, 우정 같은 진짜 목표를 지닌다. 즉, 학자들이 이기적이라고 은유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이기적인 개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종종 유전자가 행하는 가장 ‘이기적인’ 일은 진정으로 이타적인 행동을 만드는 심리적 적응을 설계하는 것이다. 자식, 배우자, 혹은 친구에 대한 사랑은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참으로 숭고하고 이타적인 희생일 수 있다. 생물학자들이 사랑이라는 심리적 적응을 포함하여 그 모든 적응들을 만드는 유전자들을 이기적이라 은유한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는 구절은 어떡할 것인가? 도킨스는 2006년에 새로 덧붙인 서문에서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는 문장은 틀렸으니 마음속에서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이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