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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5 19:21 수정 : 2013.02.25 21:00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우리는 이명박 정부 이후 각료 임명 과정을 통해 세간에 떠돌던 이야기들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후보자 중 상당수는 군대에 가지 않았으며,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위장전입·편법증여 등 상당한 불법을 저질러왔으며, 탈세와 재산증식에서는 거의 귀재라고 찬탄할 정도의 ‘실력’을 보였고, 특히 판검사 등 고위 공직자 출신은 퇴임 뒤 일반 직장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임료를 챙겼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평생 사익추구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온 사람들이 ‘공익’의 선봉이 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고참병의 욕설과 폭력을 견디며 꼬박 군대에서 2년 이상을 보냈고, 유리지갑을 가졌기 때문에 내라는 세금 다 냈으며, 편법증여·탈세를 하고 싶어도 그럴 돈과 재주가 없었던 우리 국민은 장관 후보들의 이런 전력을 보고서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수년 전 나는 미국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미국의 고질적인 ‘회전문 인사’, 즉 월가나 대기업 간부들이 각료로 임명된 다음 전 직장의 대변자로서 이익을 챙기는 일에 나서고, 장관을 그만둔 다음에는 그 정보와 인맥을 활용하여 로펌(법률회사)의 고급 로비스트로 다시 고용되는 사실을 보고 씁쓸한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고,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최고의 로비스트가 되어 한국 등 만만한 나라를 방문해 무기 중개상인이 되는 것을 보고서는 참 속이 메스꺼웠다. 미국은 중국이나 한국 등의 관료 부패를 공격했지만, 이런 행태야말로 훨씬 구조적이고 파렴치한 부패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정홍원 총리 후보자처럼 공직과 로펌을 오간 이력을 가진 사람들과 지금 각료 후보로 올라온 사람들의 과거를 보니 이제 한국은 확실히 미국처럼 된 것 같다. 아무리 자본주의에서는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일이 정당하다고 하지만 공직 경력이 로비스트로 가는 정거장이 되고, 그 로비스트들이 또 공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리가 도덕과 문명의 막장에 온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들이 로펌이나, 공직과 직위와 관련이 된 대기업의 자문역이 되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단돈 만원도 대가 없이 오가는 법이 없는 이 냉정한 자본주의에서 로펌과 기업이 이들에게 막대한 보수를 주었다면, 세금으로 법과 행정의 전문가가 된 그들이 그만큼의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이들의 임명 논란을 보면 사람이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갈이 차라리 태고 시절의 낭만처럼 그리워진다.

그래도 미국의 과거 엘리트 자녀들은 전쟁에 참전하여 국민의 모범을 보였고, 각료들이 이런 식의 범법을 하지는 않았으며, 범법을 한 대통령이 탄핵당해 물러나는 일도 있으니까 나름대로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고 세계의 지도력을 갖는 것 같은데, 한국을 보면 정말 이러고도 행정부의 영이 설지, 법이 지켜질지, 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를 추천했다 하고, 또 과거는 어떠했든 이들이 다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고 싶다. 이 복잡한 국내 문제를 푸는 데 각 분야 최고의 실력자가 동원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공익을 위해 살았다고 자기 활동을 정당화하거나, 장관이 된 뒤에도 생존을 위해 시위대로 나선 사람들을 향해 ‘좌빨’ ‘종북’이라고 공격하거나, 비판적인 지식인들에게 명예훼손 소송까지 제기한다면 우리는 더 참담한 상태에 빠질 것 같다. 가난하지만 국민의 의무와 법과 양심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국민들이 더이상 모욕당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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