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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8 19:29 수정 : 2013.02.28 19:29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우아함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오던 보수 정치가가 그날만은 몹시 설레었던 듯하다. 대통령은 뮤지컬 여주인공처럼 하루에 옷을 다섯 번이나 갈아입는 파격을 연출하면서 그 하루를 화사한 색감으로 장식했다. 그러나 5년 내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48%의 상심과 균열을 품어 안아줄 그 어떤 정책도, 화합의 ‘쇼’도 없이 역대 최저의 지지율로 박근혜 정부는 출범했다.

허니문은 짧고 현실은 엄혹하다. 국책연구기관들은 박근혜 정부가 건너가야 할 경제 현실을 ‘지뢰밭’ 같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폭탄을 다음 정권으로 용케도 잘 넘겼다. 전세계가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기점으로 수출 대신 내수 중심 체제로 전환할 무렵에도 이명박 정부는 몇몇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으로 역발상의 도박을 했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더욱 맹렬하게 불붙은 채로 다음 정권으로 넘겨졌다. 지금은 31조원짜리 용산 역세권 개발이 주저앉을 조짐이고, 이제는 토건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이 불가능하리라는 진단 속에서 건설회사들이 줄도산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4대강 길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환경운동가 행세를 하든, 많은 국민들이 예측하듯 여생을 ‘무상급식’으로 지내든, 이제 이명박 정부는 끝장났다. 이명박 정부 5년은 보수 정치의 기본 도식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황당하고 몽매한 행태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치의 총합은 아마도 ‘보수정치의 정상화’라는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취임까지의 두달여 시간을 지켜보니 갈 길이 멀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로 덜컥 정권은 잡아 놓았는데, 저들을 누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 내가 다 걱정이 될 지경이다. 5년 동안 저러는 꼴은 그럭저럭 참아주었다. 그래도 아직은 저 ‘리버럴’ 정치 엘리트들보다는 미더워 보여서 5년 더 해보라고 맡겨준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부가 이런 행태를 이어가다가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에 대한 인민들의 그나마의 옅은 신뢰마저 몽땅 허물어져 버리지는 않을까. 보수 10년은 ‘정치의 종말’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오늘날 정치에서 성장의 과실을 키우고 나눠주는 기능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제 정치는 ‘위험’을 배분하는 역량에서 좌우될 것이다. 이 나라 보수의 생존방식으로는 그저 ‘나만 아니면 되’기 때문에 ‘위험’은 대체로 약자들에게 전담될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의 책임방기로부터 출발하는 온갖 위험, 일탈, 폭력에 대하여 국가는 이제 ‘안전’을 빌미로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려 들 것이다. ‘안전’은 위험이 편만한 사회에서 좌파적 대중민주주의보다는 우파적 카리스마에 기반한 통치가 훨씬 잘 먹히는 영역이다. 그리고 ‘안전’은 이 나라 보수에게는 지난 수십년간의 노하우를 간직한 주 전공 분야이기도 하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는 학교폭력에 대한 엄정한 대처와 함께 학교에 종일돌봄 기능을 부과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학교는 더욱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에 연루된 아이들은 까딱하면 잘리거나 다른 곳으로 쫓겨갈 것이며, 학교 안의 다양한 소수자들은 더욱더 기피 대상이 될 것이다. 학교에서 파시즘적인 반교육이 ‘안전’을 빌미로 자행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5년 안에 폭탄이 어떻게 터지든, 그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격랑 속으로 빠져들든, 결국 문제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박근혜의 5년 또한 민주주의를 위한 반복된 투쟁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예감하게 된다. 이 거듭된 반복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리라.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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