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3 19:09
수정 : 2013.03.0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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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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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열린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회와 한국선거학회의 공동토론회는 비교적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권자 지형의 변화, 선거연합, 계파정치, 균열구조 등을 실증적이고 솔직하게 분석한 발표문들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객관성과 깊이를 보여준다. 대선평가위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 주변에서 보고 들은 전망은 하나같이 냉소적인 것이었다. 바깥으로는 새 정부 출범에, 안으로는 당권과 재보궐선거 공천권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마당에 이미 끝나버린 대선 평가 작업이 힘을 받을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 냉소의 이유였다. 정치적 손익관계만 따지면 이러한 냉소에 일리가 있지만, 거기에만 매몰되는 것은 5년 후 또 한 번의 패배를 예약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많은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실체에 당황해야만 했다. 정치학자나 기자들처럼 일상적으로 정치권을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일이었지만, 생계에 바쁜 보통 유권자들로서는 전통의 제1야당이 기껏 이런 수준이었음을 발견하는 것이 당황스런 경험이었다. 정치적 신념의 문제를 떠나서 본다면, 조직으로서의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문재인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지난해 6월17일이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것은 9월16일이었다. 과거의 3김처럼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단지도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민주당은 하염없이 안갯속을 헤매고 있었다. 후보가 확정되기 전까지 민주당은 실질적으로 당 차원의 선거 전략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보 확정일로부터 대선까지는 꼭 석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이 짧은 시간 동안 부랴부랴 정신없이 그 커다란 선거를 치렀다. 유권자 지형이나 정치적 균열구조의 변화가 미칠 영향이나 선거연합의 효과 같은 것을 심도있게 검토해서 전략에 반영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역량 있는 당 외부의 전문가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선 승리를 가져올 탁월한 전략이 있다고 하자. 누구에게 이 전략을 전달할 것인가? 외부의 뛰어난 아이디어를 전달받아 후보가 누가 되든 상관없이 당 차원의 전략으로 키워나갈 제도화된 장치 같은 것은 없거나, 혹은 일부 존재하더라도 아무런 실질적 영향력이 없다. 그러면 경선 후보 중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할 텐데, 그 순간 그는 그 후보의 계보로 분류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 아이디어를 전달받은 후보가 경선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전략도 인재도 묻혀버리고 만다.
누가 5년 후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대로라면 아마도 2017년 9월쯤 후보를 알게 될 것이고, 그때까지 별다른 전략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박근혜 정부가 크게 실패한다면 낙관론 같은 게 떠돌고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누적된 조직 역량의 뒷받침 없이 석달 만에 부리나케 치르는 선거는 운이 꽤나 좋아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민주당의 정책개발과 선거전략을 체계적·과학적·장기적으로 만들어낼 예산과 제도와 기구를 만들고, 누가 당대표가 되든 누가 후보가 되든 영향 받지 않는다는 불가역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지난 대선에서 가장 뼈아프게 드러난 조직의 무능을 치유할 방법이기도 하고, 현시점에서 정파적 이해관계에 영향 받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이기도 하다. 대선 국고보조금으로 민주당에 152억원의 세금을 지급하고 5년 뒤 또다시 당황하고 싶지 않은 유권자들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요구해야 할 일이다. 좋은 야당 만들기, 이제 시작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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