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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5 19:11 수정 : 2013.03.05 19:11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 수단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제한 등 투기과열과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장치들을 약화시키는 안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새 정부가 들고나온 정책들은 구태의연하고 근시안적이며, 무엇보다 우리나라 주택·부동산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다. 한국에서 ‘집’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 다들 공감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분명히 하고 해결책의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다.

첫째는 주택가격의 변동성이다. 1990년대 이후 주택가격의 최고점과 최저점의 격차를 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쉽게 말하면 집값이 널뛰듯 한다는 거다. 변동성이 높다는 건 예측가능성이 낮다는 뜻이고, 주택 구매 여부와 대출 규모를 결정할 때 불확실성이 크다는 뜻이다. 보유자산이 많은 부자들은 집값이 떨어져도 버틸 수 있지만, 대다수 중산층은 정부 정책이나 신문광고의 유혹에 이끌려 빚내어 집 샀다간 낭패를 본다. 그 결과가 하우스푸어다.

둘째, 한국에서 특별히 심각한 문제는 주택가격의 상승률보다 실질구매력, 즉 소득 대비 주택가격 수준이다.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폭을 따지기 이전에, 기본 집값 자체가 이미 한국인들의 소득수준에 비해 너무 높다. 한국은 자산불평등과 소득불평등이 모두 높은 드문 나라에 속하는데, 소득분배를 더 공평하게 하지 않고 부동산 경기를 북돋우는 건 이 이중고를 더 악화시킨다. ‘실탄’이 있는 소수 계층만 집을 살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장기적 경기부양에도 성공할 수 없다.

셋째는 가계부채 문제다. 현재 한국 가계의 소득 대비 대출원리금 상환비율(DSR)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붕괴 당시만큼이나 높을뿐더러, 주요 시중은행의 원금상환 시점이 도래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집값이 소득에 비해 매우 높고 변동성이 큰 조건에서 주택담보대출에 의한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이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규제 완화로 경기부양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끝으로 한국은 내 집을 가진 가계 비율이 높지 않은데, 전·월세 생활자들의 처지는 극도로 열악하다. 많은 선진국에서 자가 부문과 공공임대가 함께 증가해온 데 비해, 한국은 전체 가계의 40%를 차지하는 전·월세 세입자에 대한 보호가 전무하다. 한국의 임대차 관계에서 ‘갑’의 권리는 독일에서 보장된 ‘을’의 권리만큼 강하다. 그래서 ‘내 집’을 갈망하게 되는데, 그것의 실현은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소득은 낮고, 집값은 높고, 전망은 불안하고, 부채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여당의 방안은 집값을 올리고, 더 많은 빚을 내어 집을 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위의 모든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집값 상승은 여유자금이 있는 일부 계층의 투기이득과 건설기업의 단기이윤을 높일 뿐, 장기적 경기진작으로 이어질 수 없다. 규제완화로 부동산을 활성화해서 하우스푸어를 살리자는 건, 신규 구매자의 빚으로 기존 구매자의 빚을 갚는 위험천만한 돌려막기식 발상이다. 구조적 병폐가 하나도 개선되지 않고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주택과 부동산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할 큰 방향은, 한편으로 소득기반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주택가격을 구매력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안정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론 전·월세 임차인의 주거안정성을 보장해 빚내어 집을 사지 않더라도 설움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다.

새 정부가 국민행복시대를 진정 원한다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창조적 묘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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