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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6 19:19 수정 : 2013.03.06 21:30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며칠 전,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받았다.

“치주염 치료 다 끝났다. 의사가 참 괜찮아. 다 발치를 해야 할 것 같다더니 몇 개를 살렸대. 부분 틀니 하자네.”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치주염으로 고생을 하셨지만 치과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 건강보험이 없는 이들에게 치과의 문턱은 턱없이 높았다. 그래서 내 주위 사람들은 ‘야미’로 충치 치료를 하거나 생니에 진통제를 깨 넣고 통증을 견디다 상태를 악화시켰다. 어머니도 그랬다. 다행히 치료가 잘됐단다. 그런데 적잖을 틀니 가격이 걱정되었다. 그 마음을 알아채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의사가 틀니는 7월에 하잔다. 7월부터 부분 틀니도 건강보험 혜택이 된다면서? 대통령 공약이니까 되겠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부분 틀니가 다 건강보험 혜택이 되는 게 아니라 75세 이상 노인 중 어금니 2개만 돼요.”

“노인들한테 어금니 두 개? 눈 가리고 아웅이구나. 내 이럴 줄 알았다. 장관 임명자 중에 어디 서민들의 어려움을 알 만한 인물이 하나라도 있더냐? 믿은 우리가 바보지.”

어머니의 목소리에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정부가 밝힌 복지소요액 131조원에는 노인 임플란트를 위한 돈은 아예 들어있지 않다.

친정어머니가 사는 동네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다세대주택지구다. 대선을 앞두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정권 안 바뀐다. 없는 사람들이 다 박 후보 지지다.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이랑 다르다고 생각해. 조삼모사다.”

그곳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과 경제민주화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넉넉하게 해줄 거라 믿었다. 어르신의 복지를 헤아리는 마음이, 나라를 가난에서 구한 아비의 딸답다고 기특해했다. 어머니의 예상대로 우리는 박근혜 정부 시대를 맞았다. 참신해 보이던 그의 복지공약은 누더기가 되었다. 그가 국정 파트너로 뽑은 이들을 보면 다른 공약마저 실천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검찰 퇴임 후 17개월 동안 16억원을 버는 사람들이 치과진료비 때문에 생니에 진통제를 갈아 넣는 고통을 알 리 없다. 장관 후보자 두 명은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대학에 다니는 자녀가 가계곤란 장학금을 받도록 했다. 자신들이 가로챈 장학금 때문에 휴학을 하거나 혹은 은행대출금을 늘려야 했을 가난한 대학생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들의 세계는 참 신통하다. 군대에 있는 동안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대학원도 다닌다. 잠시 일하는 동안 박사학위라도 받아두려다 전문적 연구자가 아닌 탓에 실수를 좀 하고, 공적인 일에 쓰라고 국민세금으로 조성한 판공비를 개인 용도로 쓰거나, 세금을 꿀꺽하고도 당당하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해 1년 생활비로 7억5000만원을 썼단다. 그런 이가 월 100만원도 못 버는 여성들의 품위 없는 삶을 어떻게 이해할까? 아내가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은 청와대 비서실장은 여자가 팔 걷어붙이고 농사짓는 것조차 본 적이 없는 청맹과니다.

하긴 뭐 전직 대통령은 잡념 없이 열심히 일하며 바쁘게 살면 건강을 해칠 리 없다는 명언도 내리셨다. 그런데 나와 내 이웃들은 잠잘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사는데도 자꾸만 잡념이 쌓인다. 아이들 등록금, 대출금, 생활비, 병원비 때문에 잠을 설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잡념 없이 사는 바람에 우리의 잡념은 몇 배로 늘어났다. 그래서 서민들의 유일한 재산인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

나는 이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이 정권이 실패한 정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정권과 함께 국민의 삶이 더 파탄 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통령의 살 떨리는 분노가 국민이 아닌 국민의 삶을 핍박하는 이들을 향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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