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0 20:57
수정 : 2013.03.1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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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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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리라.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로 이겼다. 극심한 반엠비(MB) 정서와 높은 투표율에도 일궈낸 값진 승리다. 이쯤 되면 승자에게 상당한 권한이 위임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게다가 “국가와 결혼”하느라 개인적 사랑도 포기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야당이 정부조직 개편의 발목을 잡아 국정운영이 마비되는 게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담화문이 그의 이런 심정을 가늠케 해준다. “새 정부가 국정운영에 어떠한 것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야 대표들과의 회동을 통해 발전적인 대화를 기대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큰 걱정과 함께 책임감을 느낍니다.”
대저 선거란 게 무엇인가. 원론적으로는 국가적 의제를 결정하고 구체적 정책을 검증·선택하는 기제라 하지만 결국 지향할 방향과 그걸 담당할 사람을 정할 따름이다. 지난 대선에서 표출된 민심은 자명하다. 진보가 아닌 보수의 정책기조, 문재인 후보가 아닌 박근혜 후보에게 나라 살림을 맡긴 것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지난 5년간의 엠비정부도 싫지만, 1998년부터 2008년까지의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삶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 대선에서 확인됐다.
이처럼 시대교체를 향한 강한 열망이 정권교체 갈망을 넘어섰기에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담화문에서 밝힌 대로 “미래성장동력과 창조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 온 분”이 “우리 정치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하는 상황까지 생기고 말았다. ‘우리 정치의 현실’ 때문에 미래창조과학부의 내정자이자 새 정부 아이콘이던 김종훈이 불쑥 사퇴했으니 대통령으로선 충분히 화가 날 만하다.
그뿐인가.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유엔 안보리는 강도 높은 제재를 결정했다. 안보위기에 많은 사람이 전쟁을 걱정한다. 어느 나라든 국가적 위기 앞에선 정쟁을 넘어 힘을 합치는데 지금 야당은 아랑곳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한때 안보불안 이미지를 씻기 위해 연평도에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까지 열던 민주당이 정작 안보위기가 닥치자 나몰라라 하니 박 대통령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했던 통합진보당,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선에 출마했다던 이정희 대표가 “대북 제재와 한-미 합동 군사훈련 즉각 중단”을 외쳐도 민주당은 침묵한다. 보수의 눈엔 이러니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기세등등한 것이다.
글로벌리서치의 4일 오후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66.7%였다. 3일 디오피니언의 여론조사에서도 정부조직 개편의 처리가 지연되는 이유로 ‘야당의 발목잡기’(35.7%)가 ‘대통령의 원안고수’(23.4%)보다 더 많았다. 따라서 상당수 국민의 생각을 이렇게 추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게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압도적인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4대강을 밀어붙였듯이 특정 정책을 힘으로 관철시키려 한다면 모를까 그냥 일할 태세와 진용을 갖춰달라는 것인데 이조차 거부하는 건 일종의 반대권 남용이다.
정치는 역지사지다. 야당은 자신들이 지금 집권하고 있다면 야당이 어떻게 하기를 바랄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는 타협이다. 옳고 그름의 틀에 갇히면 정치는 본래의 기능을 잃는다. 박 대통령의 아집도 한심하지만 야당의 고집도 어리석다. 지금 이 순간 민심은 대승적 결단을 양쪽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 이런 대사가 있다. 대통령과 야당이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네가 하는 것이 다 옳다고 여기지는 마!”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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