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2 19:11
수정 : 2013.03.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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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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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대한 두 정치세력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안철수 전 교수의 출마선언에 대응하는 진보정의당의 대응은 부당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법정’으로 보궐선거를 규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진보정의당 후보의 당선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노원병 주민이 선택한 것은 진보정의당의 ‘노회찬’이었지, 노회찬의 ‘진보정의당’이 아니었다. ‘노회찬’을 다시 선택할 수 없는 노원병 주민들에게 ‘국민법정’이라는 프레임은 본질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진보정의당이 전략 공천한 김지선씨는 훌륭한 활동가일지언정, 이 ‘국민법정’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국민법정’이라는 성격은 다양한 의제와 경쟁해야 할 하나의 의제일 뿐이다. 안 전 교수의 출마를 비판하거나, 노원병 주민의 새로운 선택 가능성을 차단할 유일한 의제도 정당한 명분도 되지 못한다. 더욱이 노원병 주민들이 지역의 현안, 자신들의 삶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법정’이라는 성격에 따라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위험하다. 이러한 방식은 주민들의 구체적 삶에 뿌리내리며 정치를 일궈온 노회찬 전 의원의 방식도, 진보정의당의 방식도 아니다.
안 전 교수 쪽이 노원병을 선택한 이유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서 민심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에서 새 정치의 씨앗을 뿌리”겠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당선이 용이한 노원병을 선택한 명분치고는 궁색하다. 서울에서도 야권 성향이 비교적 강한 노원이 왜 민심의 바로미터가 되어야 하는지, 부산은 단지 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심의 바로미터가 될 수 없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안철수 전 교수에게 지역주의 타파의 사명을 부과하며, 부산에서의 출마를 종용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단어 하나하나를 절제하며 말 속에 메시지를 담던 그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 그것이 안철수 식 ‘진심의 정치’ 아니었던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안 전 교수가 주장하는 ‘새 정치’의 내용에 진보정의당과 같은 소수당의 정치적 중요성이나 제도적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도 문제다. 진보정당이 지역에서 어렵게 싹을 틔운 곳에서 다시 ‘새 정치’의 씨앗을 뿌리려고 한다면, 이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필요했다. 안 전 교수의 노원병 선택이 실망스러운 이유 중 하나다.
이제 노원병 보궐선거는 야권의 두 주요 후보가 결정되었다. 두 후보의 다음과 같은 출사표에서 전국적 관심에 부응하는 희망을 발견한다.
“노원지역은 중산층이 많이 거주하는 대한민국 대표적 지역이다. 그 지역에서 여러 가지 많은 관심사들, 예를 들어 노후·교육·주거 등의 현안 문제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문제 해결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정치의 길을 걷고자 한 것이다.”(안철수)
“참담한 노동현실 속에서 온몸을 내던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워왔고, 여성 인권운동의 일선에서 일했다. 또 노원구 상계동의 지역공동체를 일구는 생활정치인으로 살아왔다.”(김지선)
안철수 후보는 “지역의 노후·교육·주거 등의 현안 문제” 등에서 자신의 입장을 구체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때다. 김지선 후보와 진보정의당은 그간의 노동·인권운동과 생활정치의 실천을 통한 경험과 능력이 ‘안철수’라는 새로운 정치 현상에 대해서도 차별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확인받아야 한다. 이러한 경쟁 과정을 통해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권리’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그것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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