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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01 19:18 수정 : 2013.04.01 19:18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남북관계가 전시상황에 들어갔다고 북한이 선언했다.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이 녹아나고 청와대도 초토화될 것이라며 연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왠지 심드렁하다. 개막을 맞은 프로야구장에 구름 관중이 몰리고, 코스피지수는 상승세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날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이날 할인 행사를 한 화장품 상표였다. 이런 태평한 모습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보불감증을 보여준다며 개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안보불감증은 당장 전쟁이 코앞에 닥친 위험한 상황인데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을 만큼 우리의 안보의식이 엷어졌음을 꼬집는 말일 것이다. 한반도는 전쟁중이라고 북한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마당에, 안보불감증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 만약 현 시대가 인류 역사상 전쟁의 위험이 어느 때보다 낮은 평화로운 시대라면, 지금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는 안보불감증의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조만간 국내에도 번역될 책 <우리 본성의 더 선한 천사들>에서 펼치는 주장이 맞는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차분한 모습은 전쟁이 구닥다리가 된 현 시대의 당연한 반응일 뿐이다.

참고로 핑커는 이 책에서 전쟁뿐만 아니라 고문, 살인, 구타, 강간, 성차별, 자녀 볼기짝 때리기 등 모든 형태의 폭력이 인류가 처음 출현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이 중 전쟁만 살펴보기로 하자. 전쟁이 계속 줄어든 덕분에 오늘날 세계는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은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린다. 정반대로 20세기는 두 번의 세계대전, 한국전쟁, 월남전 등 역사상 피를 가장 많이 흘린 세기라고 하지 않던가?

방대한 자료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이러한 믿음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국가가 성립되기 전인 1만여년 전에는 세계 총인구의 약 15%가 전쟁으로 사망했다. 반면에 20세기에는 총인구의 0.7%가 전쟁으로 죽었다. 특히 2차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전쟁이 눈에 띄게 줄어서 1980년대에는 세계 인구의 0.01% 미만이, 21세기엔 0.001% 미만이 전쟁으로 죽었다. 20세기 후반부터 평화가 이어지고 있음은 각 국가의 징병제 군 복무 기간과 군 병력 규모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왜 전쟁이 줄고 있는가? 핑커는 전쟁과 같은 조직적인 폭력을 배척하게 하는 심리, 곧 공감, 자기절제, 이성, 정의감 같은 우리 내부의 ‘천사들’이 실질적인 제도와 규범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제도로서 먼저 국가 간의 무역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국가의 부가 침략전쟁으로 넓힌 영토에서 나왔다. 오늘날 국가의 부는 쌍방이 이득을 보는 무역에서 나온다. 즉, 전쟁은 더는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다. 실제로 1945년 이후 국가 간의 경계가 전쟁으로 변경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국가 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국제기구의 출현, 독재자가 돌발행동을 일으키는 것을 막는 민주주의의 파급도 전쟁을 감소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물론, 한반도에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오늘날 우리는 공개 장소에서 사형을 집행하거나, 돈을 갚지 못한 이를 감금하거나, 일상적으로 고문을 자행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인류가 출현한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불감증을 우려하기 전에 그동안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해온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차분히 짚어보자.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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