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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08 19:15 수정 : 2013.04.08 19:15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1948년 4월3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제주도 남로당은 파업과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서북청년단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민심은 무장대 쪽으로 돌아섰고, 급기야 군은 300여명의 무장대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동조한다고 의심되는 민간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 지대의 수많은 마을이 지도상에서 없어졌고, 노인·아동·여성을 포함한 3만여명이 희생되었으며, 남은 가족은 폭도의 멍에를 쓰고 지금까지 65년 동안 국민 아닌 국민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남재준 국정원장은 2008년부터 “제주 4·3 사건은 북(한)의 지령으로 일으킨 무장 폭동 내지 반란”이라고 강연을 하였고, 지난번 청문회에서 그의 생각을 재차 문의하자 “우리 군인들이 알기는…(그렇게 알고 있다) 사법부는 달리 판단했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편 참여정부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장수 대통령 청와대 안보실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4·3 사건은 명백히 좌파에 의한 무장 폭동”이라며 “군경에 의한 일부 민간인 피해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폭동 진압 과정에서 불가피한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나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제주 4·3 사건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특히 육사와 군에서는 아예 군의 부끄러운 과거는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이런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국가안보 라인의 최전선에 서 있는 책임자들이고 군의 불법을 옹호해서는 안 될 위치에 있다. 특히 김장수 실장은 참여정부의 각료까지 지낸 사람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4·3 희생자들에게 공식 사과한 일까지 알고 있다. 제주4·3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피해 신청자 1만4000명 중 80%가 군경의 무리한 진압작전 중 학살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것은 결코 정당한 작전도 ‘일부 피해’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롭게 확인된 사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이전 정부가 공식적으로 결정한 보고서와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까지 완전히 무시한 채, 북한과 좌익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서, 사법부와 군의 입장은 다르다고 주장하면 과연 군의 체면이 설까? 진정 힘 있는 군대라면 적과의 전투에 용감해야 하고 민간인에게는 관대해야 하지만, ‘국민 없는 군대’는 전투에 패배하면 죄없는 민간인들에게 화풀이를 다반사로 한다. 제주 4·3 사건 당시, 그리고 한국전쟁 전후 군이 어땠을까? 나는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일을 하면서 군의 공식 역사와 다른 전쟁기 국군의 잔학상을 증언하는 수천명의 진술을 읽었으며, 제주 4·3 사건 당시 강경진압을 거부하다 9연대장에서 쫓겨난 김익렬 장군처럼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의로운 군경도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과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이 마당에 안보책임자들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안보란 무엇인가? 이들이 제주 4·3 사건을 이렇게 본다는 말은 지금도 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이대며 군과 정보기관이 민간인들에게 이런 잔혹행위를 해도 좋다는 말이 아닌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는 인정하지 않은 채,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거나 정치에 개입해온 국정원과 기무사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지난 65년 동안 국가를 원망하면서 상처를 안고 살아온 희생자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하지 못할망정 이들을 폭도로 몬다면, 잠들려던 영혼이 다시 벌떡 일어날 것이다.

제주 4·3 당시 무리한 토벌을 편 것을 군이 공식 ‘인정’하고, 육사에서 그것을 가르칠 때 국민의 군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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