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18 19:42
수정 : 2013.04.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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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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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해본 지 오래되어 대화의 방법을 잊은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대화의 의지는 있으나 대화 제안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아는가? 만남의 시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빈말이다. 언제 한번 보자는 우리들의 일상적 허언처럼.
북한 역시 대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관계개선이나 평화체제를 논의할 수 있다. 출구를 닫아놓고, 입장을 머뭇거리는 한·미 양국을 비난할 수 있는가? 북한이 핵 억지를 유지한다면, 억지의 수단을 서로 내려놓는 평화체제는 불가능하다. 핵 보유와 평화체제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화의 필요를 넘어 지금 필요한 것은 대화의 방법이다. 대북 특사를 보내자는 주장도 있다. 특사는 대화의 형식이다. 대화의 내용은 무엇인가? 북한은 비핵화를 부정하고, 한·미 양국은 평화체제를 말하지 않는다. 물건도 없는데, 택배를 부를 수 있는가?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다. 포괄적 관계개선과 평화체제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대화의 내용을 둘러싼 신경전이 장기화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개성공단이 중단되어 있다. 중소기업인들이 오늘도 출입사무소에서 문이 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왜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구체적으로 만나자고 제안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불씨가 꺼지면 다시 살리는 것이 그만큼 힘이 든다. 꺼져가는 불씨를 그냥 바라보기에는 우리가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개성공단을 살리겠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죽일 것인지를 정부가 물어봐야 한다.
소강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상황관리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협상이 재개되지 않으면 위기가 재발된다. 우리가 할 일은 위기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확실하게 전환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화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정부가 보수단체의 전단 살포를 막은 것은 잘했다. 이명박 정부와 확실하게 결별했다. 그렇지만 대화를 굴복이나 나약함으로 인식하는 이명박 정부의 관성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유감이다.
대화는 그런 것이 아니다. 폭력이 제도 밖의 대결이라면, 대화는 제도 안의 경쟁이다. 그래서 대화는 정치다. 전쟁은 피 흘리는 정치지만, 정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는 마오쩌둥의 말도 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진보정당까지 포함해서 모든 야당들이 정부의 대화 재개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대화는 우선 탐색 국면을 거칠 필요가 있다. 만나보지도 않고 상대의 의도를 단정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줄 것인지를 조율해야 한다. 탐색은 공개적인 회담이 아니라, 비공개 접촉이 효과적이다. 물론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비공식 비선은 금물이다. 당연히 대통령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공식 조직이 나서야 한다. 7·4 남북공동성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조율 과정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위기의 국면을 거치며 증오가 쌓여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자제하는 것이다. 정부의 어깨에 부여된 역사적 과제를 확실하게 인식하면 된다. 평화를 만드는 것이 전쟁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대북정책에서 정치의 힘을 보고 싶다. 정치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머뭇거리다 국제환경 변화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지금이 바로 대화를 주도할 기회다. 대화의 문 앞에서 왜 망설이는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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