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4 19:15
수정 : 2013.04.2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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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한양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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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을 비롯하여 온갖 꽃들이 흐드러진 대학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외관만 그럴 뿐, 정녕 아름다운 것들은 시나브로 사라져 간다. 온몸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전수하던 지성인은 하나둘 떠나고 논문 편수를 늘리는 데 급급한 지식기사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지적 호기심과 순수한 열정으로 질문하고 공부하던 학도들은 보기 힘들고 취업준비생만 들끓는다. 지금 한국 대학을 기업연수원으로, 교수를 지식기사로, 학생을 취업준비생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대학평가다.
대학평가는 서열화를 극단화한다. 한국 교육의 1순위 문제는 ‘스카이서성한(서울-고려-연세-서강-성균관-한양), 이른바 명문대학 중심으로 위계를 형성하고 있는 대학서열화 체제다. 평가를 추진하는 언론사는 분야별로 점수를 매기고 합산하여 서열을 발표한다. 여기에 맞추어 수험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대중의 대학 선호도는 요동치고, 대학 구성원은 일희일비한다.
이는 대중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한다. 천편일률적이면서 양적인 지표에 치우친 대학평가 결과가 학문과 교육의 질적 수준과 일치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중은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지난해 한 언론사의 평가에서 총점 7위와 10위 대학의 점수 차이는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채 2점도 되지 않는데, 양 대학에 대해 대중이 느끼는 위상은 ‘명문’과 ‘2류’의 차이다. 더 나아가 대중은 알게 모르게 평가의 잣대를 대학을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구성한다.
대학평가는 대학의 발전을 왜곡하고 양적 성장 중심으로 대학행정을 재편한다. 대학 당국은 이념과 여건에 맞추어 마스터플랜을 짜고 정책을 구현하기보다 당장 평가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재정과 인력을 집중시킨다. 재정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학 당국은 대학 입장에서 꼭 필요한 분야보다 평가에서 가중치가 높은 지표에 집중 투자하기에 발전이 왜곡되고 재정의 낭비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는 등록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학평가는 대학과 학문의 획일화 또한 조장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홍익대 미대, 건국대 축산학과 등은 최고 명문임을 자부하였다. 대학은 이념과 학풍, 큰 대학과 작은 대학, 연구 중심과 교육 중심, 인문계 선도와 이공계 선도 대학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인 평가기준과 계량적인 수치로 평가하기에, 대학은 특성화를 추구하기 어렵다. 이밖에도 대학평가는 대학의 가장 핵심 존재 근거인 학문의 질적 퇴보를 야기하고, 교수 및 구성원의 갈등을 조장하며, 학문의 식민화를 심화한다.
대학평가는 ‘진리 욕구의 실천 도량’과 ‘학문의 발전과 지성의 실천을 통한 사회봉사’라는 현대 대학의 목적에 부합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교육 이념과 역량, 여건에 맞게 특성화를 지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형을 만들고 이에 따라 지표와 기준을 달리 설정하고 대학이 이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서열화는 일체 지양하고, 양적인 지표로 측정할 수 없는 교육 및 연구의 질적 수준, 대학의 민주화, 행정과 재정의 투명성 등도 평가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대학의 목적과 배치되는 지표, 곧 대학을 기업연수원으로 전락시키고 각 대학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취업률은 평가 지표에서 삭제해야 한다.
발전이 아니라 퇴보를 불러오는 평가는 없는 것이 더 낫다. 몇 년 전에 필자가 전국의 국문과 학과장에게 이메일로 평가 거부운동을 제안하였을 때 숱한 압박과 회유를 받으면서도 압도적인 대다수 교수가 거부 전선에 끝까지 섰다. 그 이유를 대학평가 당사자들은 곰곰이 되새기기 바란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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