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1 19:05
수정 : 2013.05.0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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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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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시골로 와 마당에 감나무와 앵두나무를 심었다. 공부방 아이들이 여름엔 앵두를 따 먹고 가을에는 감을 따는 꿈에 부풀었다. 나름 정성을 쏟았지만 감나무는 일찌감치 말라 죽고 앵두나무도 영 신통치가 않았다. 처음엔 돌이 많은 척박한 땅 때문이라 생각했다.
3, 4년이 지나서야 앵두나무 주변에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너무 많아 가지를 마음껏 뻗지 못하고 햇볕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거름을 애먼 데다 주는 바람에 잔뿌리가 영양분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농사가 아이를 키우는 일과 같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닫게 되기까지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더 겪어야 했다.
나무는 잔뿌리로 영양을 흡수해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잔뿌리에 영양분이 미치지 못하면 나무는 점점 말라 죽는다. 사회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그러나 세상은 무성한 푸른 잎과 풍요로운 열매만 볼 뿐 땅 밑에는 관심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하찮게 여기는 관성에 젖어 나무 밑의 여린 실뿌리들이 가진 생명력과 중요성을 외면하고, 여린 잎과 줄기의 쉼 없는 노동도 쉬 잊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어른들이 너희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나 사회가 너희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거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너희가 우리의 미래라는 말은 아예 입에 담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언제나 새 대통령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래를 꿈꿀 기회를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기대가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술 더 뜨는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포함한 99% 국민을 위한 정당을 지향한다더니 이제 서민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정당을 지향하겠단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 최저임금 현실화를 주장하던 당론은 두루뭉술한 원론적인 표현으로 바꾸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는 아예 폐기했다. 아이들이 행복한 오늘과 내일을 만드는 데 디딤돌이 될 무상의료·무상급식·무상교육, 반값 등록금 따위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우리 작은학교의 초등부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 공부방에 오는 순간 눈물을 쏟아내기 일쑤다. 친구 때문에, 공부 때문에 주눅 들어 있다 온 아이들과 시를 쓴다. 공부방 아이들은 시를 통해 학교와 집에서 받은 상처와 슬픔을 나누며 웃음을 되찾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열평 분식집에 딸린 가겟방으로, 일 나간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텅 빈 지하방으로,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엄마를 기다리러 동네 마트 앞으로 간다.
그 아이들이 그 마음에 자기보다 더 약한 아이를 품는다.
우리 반에 불쌍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애는 공부는 우리 반 꼴찌에서 두번째,
체육은 꼴찌에서 3번째,
혼나는 걸로 하면 일등,
선생님한테 맞는 걸로도 일등.
따돌림당하는 것도 일등.
잘하는 게 없으니까
싸움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
그래서 싸움도 일등.
싸움이 재미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싸움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한다.
다른 걸 느끼거나 해보지 못해서
불쌍하다.
이 시를 쓴 5학년 아이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아이의 친구가 다른 걸 느끼고 해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지 않겠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어린이 행복지수가 꼴찌라는 대한민국의 어린이들도 어린이날을 기다린다. 사흘 남았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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