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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05 19:19 수정 : 2013.05.05 19:19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3년간 에스엔에스(SNS)와 한국 정치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최근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전개를 지켜보는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온라인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민들의 공론장 형성과 정치 참여를 어떻게든 막고 왜곡하려는 시도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새누리당, 언론, 관료, 종교인, 전문가 집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득권자들이 음으로 양으로 참여한 ‘거대한 거짓’이었다. 국정원 사건 수사의 결말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설사 남김없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의 한 부분일 뿐, 거대한 거짓의 대부분은 진실의 얼굴을 한 채 한국 사회에 그대로 남게 될 것이다.

이 거대한 거짓의 최전선 소총수가 바로 ‘알바’이다. 이들은 호감 가는 외모의 젊은 여성 사진을 자신의 사진이라고 올려놓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이들은 어디선가 전달받은, 똑같은 내용의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와 민주 시민에 대한 모욕을 총알 대신 끝없이 쏘아댔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행동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았다. 트위터에만 한정해 보더라도, 자료 분석을 통해 거의 틀림없이 ‘알바’라고 특정할 수 있는 계정의 수는 최대 수만개에 달했다. 물론 실제 알바생의 수가 수만명인 것은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계정연동 오류’ 사건에서 보듯이, 한 사람이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게는 100개 이상의 계정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동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는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그 수혜자가 이들을 직접 사주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일반인의 상식에 반하는 선거법 유권해석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의견 표명을 규제하던 선관위와 검찰은 알바들에 의해 만들어진 ‘유령 여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몇몇 극우 인사들은 자신들의 누리집이나 블로그를 통해 어떻게 하면 에스엔에스에서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슬그머니 정체를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비뚤어진 생각을 퍼뜨릴 수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가르쳤다. 목사라는 사람은 아예 사무실을 차려놓고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을 해댔다. 일부 전문가들은 에스엔에스 연구는 고사하고 에스엔에스 데이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기 눈으로 단 한 번 본 적도 없으면서 왜곡된 선전에 그럴듯한 해석을 달아주고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즐겼다. 옛 한나라당 혹은 현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유령들이 왜곡해준 덕분에 조금은 덜 불리하게 된 온라인 정치 지형의 변화에 한시름을 놓았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대부분 정치인들은 이러한 변화에 무지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이 마이크로타기팅을 통한 과학적인 선거를 통해 이기든 말든 그건 바다 건너 얘기일 뿐, 선거 때면 무턱대고 도와줬으면 좋겠고, 선거 패배 후엔 에스엔에스 여론을 너무 믿었다고 불평이나 해댈 뿐이었다.

정권, 여당, 언론, 관료, 종교인, 전문가 집단 등이 음으로 양으로 모두 관련되어 만들어낸 거대한 거짓이 있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다시 한번 지체시켰고, 그 흐름 속에서 ‘국정원녀’ 사건이 불거짐으로써 현재 진행중인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거대한 거짓을 함께 만들어냈던 대부분의 집단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짐짓 국정원을 상대로 개혁 방안을 충고하기조차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혹시라도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이 줄어들 수 있게 된다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거짓의 대부분은 그대로 남는다. 언젠가 들었던 씁쓸한 농담이 떠오른다. 세상 모든 범죄 중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죄는 ‘걸린 죄’라고 했던가.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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