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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3 19:23 수정 : 2013.05.13 19:23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군소리부터 시작하자. 성추행이나 강간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성추행의 가해자 혹은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을 찾는 작업도 포함된다. 물론, 그런 요인을 찾았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진 않는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여성이 성추행을 당하기 쉽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상상해 보자. 이 결과가 성추행범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거나, 모든 여성은 바바리를 입지 말아야 할 책임이 부과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희롱은 대개 직장 내 권력관계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성추행과 구별되지만 큰 틀에서 유사하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성희롱은 남성이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긴다. 여성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성적으로 표출되어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게 한다. 반면에, 진화적 시각에서 성희롱은 남성이 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생긴다. 여성과 일시적 성관계를 맺으려는 욕망이 여성의 의도를 잘못 해석해서 여성의 허리를 툭 치게 한다.

상대방이 내게 성적으로 관심이 있는지 알아내려면 상대가 보내는 애매한 낌새들을 잘 해석해야 한다. 입가에 피어난 미소, 상냥한 말투, 나와 눈을 맞추는 태도는 그저 윗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홀딱 반했음을 은근히 알려주는 증표일까? 여러 연구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과 달리 상대방이 별 뜻 없이 취한 행동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경향이 있다. 여직원이 과장님께 자판기 커피 한잔 대접하면 “혹시… 날 좋아하는 걸까?” 고민하느라 과장님은 밤새도록 몸을 뒤척인다.

상대방의 단순한 친절로부터 덮어놓고 성적인 의도를 읽어내는 성향이 오직 남성한테서만 진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의 애매한 낌새가 성적인 신호인지 아니면 그냥 친절인지 판단할 때 틀릴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실제로는 단순한 친절인데 상대가 내게 푹 빠졌다고 김칫국을 마시는 잘못이다. 둘째, 실제로 상대방이 내게 푹 빠졌는데 나에게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느냐며 기회를 놓치는 잘못이다. 그런데 진화 역사에서 남성은 되도록 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자식을 더 많이 낳을 수 있었다. 여성은 평생 낳을 수 있는 자식 수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여러 남성과 마구 성관계를 해서 얻는 이득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제 남성이 각각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입는 손해를 비교해 보자. 김칫국부터 마시는 잘못을 저지르면 사회적으로 창피를 당하는 손해를 입는다. 하지만 남성으로서는 성관계 기회를 놓치는 잘못을 했을 때 입는 손해가 훨씬 더 컸다. 그러므로 남성의 마음속에는 혹시나 잘못되었을 때 입을 손실이 적은 선택지인, 상대방의 단순한 친절로부터 덮어놓고 성적 신호를 읽어내는 성향이 진화하였다. 특히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여성이 상사의 요구를 대놓고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남성은 하룻밤 성관계를 약속하는 신호로 점점 더 오해함에 따라 성희롱이 일어난다.

성추행은 남성이 여성의 마음은 자신의 마음과 전혀 다르다는 - 오늘 처음 본 이성과 뜻하지 않게 성관계하는 상상에 기뻐하기는커녕 몸서리치며 혐오스러워하는 마음도 있다는 -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먼저 배려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은 남성과 여성의 마음은 다르다는 진화적 인식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왜 청와대 홍보수석이 피해자는 제쳐두고 대통령에게 먼저 사과했는지는 진화의 미스터리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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