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5.15 19:21 수정 : 2013.05.16 09:40

김현정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동방예의지국에 웬 ‘시건방’이란 말인가? 공손함이야말로 우리네 고달픈 백성의 생존 미덕 아니던가? 뉴스를 보면 청와대에서 장관 임명장을 받으며 악수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받는 사람은 으레 몸을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악수를 한다. 저렇게 굽실굽실하는 것이 몸에 배다 보면 그분들 척추관절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몇 해 전 어느 걸그룹이 인기몰이했던 춤사위가 있었다. 최근 월드스타 싸이가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그의 신곡에서 이 춤을 다시 선보여 새롭게 화제가 되었다. 동작은 다음과 같다. 먼저 등과 허리를 쭉 펴고 서서 어깨에 힘을 뺀 채 가볍게 팔짱을 낀다. 거만한 듯 골반을 앞으로 내밀고 턱은 비스듬히 치켜들고 눈을 내리깐다. 그러고는 어깨와 골반을 리듬에 맞춰 슬쩍슬쩍 좌우로 흔든다. 되도록이면 최대한 거만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이 춤의 핵심이기 때문에 ‘시건방춤’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정형외과 의사 시각에서 볼 때 이 춤은 참으로 훌륭하다. 춤출 때의 자세가 여러모로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우선 척추 건강에 좋다. 골반에서 허리를 지나 등과 목으로 연결되는 우리 몸의 중심 기둥을 바르게 펴준다. 그 기둥의 주춧돌이 되는 하부 요추와 골반을 튼튼히 잡아준다. 게다가 등이 펴지면서 자연스럽게 흉곽도 열려서 폐활량이 증가하고 호흡기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몸통을 흔들면서 안에 담긴 장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소화기에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즐거워지니 정신건강에 좋다.

요즘 현대인들은 업무 자체 때문에 자세를 망가뜨려 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종일 컴퓨터를 한다거나 운전을 한다거나, 대개의 작업들은 몸통 앞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등이 굽고 어깨가 앞으로 모아지게 된다. 이런 자세가 습관처럼 굳어지다 보면 자세를 잡아주는 기본 근육인 척추기립근이 약해지기 쉽다. 요즘 아이들 척추측만증이 많아지고 어른들 허리병과 어깨병이 증가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들이 한몫하고 있다.

오랫동안 구부정한 자세를 계속하다 보면 이곳저곳 반갑지 않은 병들이 찾아온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어깨가 올라가지 않는다. 때로는 등과 허리가 뻐근하게 저려온다. 왜 이런 병이 생겼는지 영문을 몰라 하지만 사실 이유는 명백하다. 누적되어온 나의 나쁜 자세들이 모여서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 몸은 속이지 않는다. 나쁜 것을 투자하면 나쁜 것으로 돌려주고, 좋은 것을 투자하면 좋은 것으로 보답한다.

늘 구부정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려고 하면 이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투정을 한다. 좋은 징조다. 그동안 너무 쉬어서 종잇장처럼 퇴화해버린 현대인의 근육들이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일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좋은 자세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꾸준한 습관만이 답이다.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나는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한번 점검해보자. 허리는 어떤가? 구부정 수그리고 있지 않은가? 목은 어떤가? 스마트폰 액정화면이나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거북이처럼 앞으로 쑥 빼고 있지는 않은가? 어깨는 어떤가? 바짝 끌려 올라가 눈싸움 눈송이 뭉치듯 빡빡 뭉쳐지고 있지는 않은가? 얼른 등을 쭉 펴고 어깨에 힘을 빼 보자. 따라서 가슴도 펴질 것이다.

몸을 털고 일어나자. 팔짱을 끼고 살랑살랑 시건방춤을 질러보자. 이렇게 좋은 동작은 국민체조 준비단계에 한 대목 들어가도 손색이 없다. 고달픈 오늘, 마치 패션모델이라도 된 듯, 마치 육군 사관생도라도 된 듯 그렇게 당당하게 신명나게 시건방지게 몸을 펴고 흔들어보자.

김현정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