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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7 19:33 수정 : 2013.05.27 19:33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상을 주었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에게 상으로 오이를 주었을 때는 아무 불평이 없던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는 포도를 주고 자기에게만 오이를 주자 엄청 화를 내면서 오이를 내던졌다고 한다. 화가 난다고 오이를 내던지면 자기만 손해 아닌가. 이 학생은 냉정하게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 이성보다 불공정을 참지 못하는 감정이 앞선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2003년에 미국의 에머리대학에서 행한 유명한 실험 얘기고, 여기 등장하는 학생들은 갈색꼬리감기원숭이들이다. 이후에도 원숭이들이 공정함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보여주는 정교한 실험들이 많이 행해졌다. 원숭이들은 그렇다 치고, 사람들은 어떨까? 더 합리적이어서 감정에 휩쓸려 손해를 감수하는 짓 따위는 안 할까?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게 있다. 갑과 을에게 천원짜리 지폐 열장을 주고 나누어 가지라고 한다. 어떻게 나눌지는 갑이 정하고 을은 이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만약 을이 갑의 제안을 거부하면 돈은 회수되어 둘 다 한푼도 받지 못한다. 이들이 만약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라면 갑은 구천원, 을은 천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을은 천원이라도 받는 편이 전혀 안 받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며, 이를 아는 갑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9:1의 제안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이러한 실험을 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5:5나 6:4 정도로 나눈다. 때로 매우 불공정한 제안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제안은 대개 거부된다.

여기서 을의 거부가 중요하다. 갑의 결정권을 통제하는 것은 을의 거부권이다. 을은 갑의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손해를 보지만, 갑도 돈을 받지 못하게 하여 그의 이기적인 행동을 벌하는 것이다. 갑은 이런 위협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애초부터 을에게 비교적 공정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 을에게 거부권을 주지 않고 갑이 일방적으로 분배를 결정하는 실험을 해보면 대개 매우 불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진다.

설사 내게 손해가 될지라도 불공정한 처사를 거부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성향은 인간의 본성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서로를 대할 때 공정함을 상당히 고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하게 서로를 배려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회적 협동을 조직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사회적 협동이 중요한 동물들은 공정함을 추구하는 강력한 감정을 진화과정에서 발달시켰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소위 갑을관계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을의 서러움은 불공정한 처사를 당하고도 이를 거부하거나 맞서 싸울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이를 집어던지거나 천원을 거부하자니, 그나마도 없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 문제다. 아무리 억울해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며, 많은 이들을 이런 처지에 빠뜨리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신뢰와 협동은 연목구어다.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적 협동을 조직하는 뛰어난 기제다. 하지만 시장의 효율성은 누구나 불공정한 거래는 언제라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전제로 한다. 수많은 을들이 갑과의 거래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경제에서는 ‘보이는 손’이 나서서 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공정거래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보완해야 한다. 집단소송제 등 을들의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을의 거부권이 보장되어야 하고, 이는 과도한 경제력 집중의 해소와 제대로 된 복지를 요구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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