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9 18:59
수정 : 2013.05.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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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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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동운동이 들불처럼 타오르고 빈민들의 철거투쟁이 한창이던 때 인천의 빈민지역인 만석동으로 들어갔다. 세상은 변혁의 기운으로 들썩였지만 만석동은 조용했다. 순간 변화의 길에서 나만 떨어져 나오는 것은 두려웠지만, 변화와 거리가 먼 가난한 이들의 악다구니와 투박한 정이 좋았다. 1년 동안 신문배달, 봉제공장 노동자, 노점상을 하며 지내다가 88년 공부방을 열었다.
공부방 아이들은 만석동 근처의 부두나 목재공장, 봉제공장 노동자의 자녀들이었다. 우리는 공부방 아이들에게 너희도 열심히 공부해 스카이(SKY)대학에 가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건강한 노동자가 되어 함께 살자 했다. 어떤 이들은 아이들에게 노동자가 되라고 하는 우리에게 아이들에게 패배를 가르친다고 비난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공장들이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2년간의 구제금융 시기를 겨우 버텨낸 노동자들을 기다린 일자리는 계약직이거나 파트타임이었다. 먹고살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경제적 불평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그 골을 메우는 방법은 빈부의 격차 없는 소비였다. 10평짜리 판잣집에 살거나 20평짜리 빌라에 살거나 35평짜리 아파트에 살거나 똑같은 브랜드의 점퍼를 입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멨으며 삼성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도 선착순 달리기에서 늘 가장 먼저 탈락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달리기의 규칙을 바꾸자. 우리는 열 명이 다 같이 뛰자.”
그러기 위해 공연을 시작했다. 벌써 23년째다. 우리는 해마다 가난한 우리의 이야기를 인형극이나 타악·춤·영상·노래에 담는다. 초중고생부터 대학생들까지 6개월 동안 공연에 매달리지만 공연의 성과가 스펙이 되거나 점수가 되지 않는다. 하루종일 생계를 위해 직장에서 일하다가 와 연습에 참여하는 이모·삼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공부방 밖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실속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는 혼자 앞서거나 혼자 빛나는 길 대신, 함께 가고 다 같이 빛나는 길을 선택한다. 그 길에서 얻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인천의 아트플랫폼에서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스물세번째 정기공연을 치렀다. 올해 주제는 ‘세상을 만나다’였다. 공부방 아이들은 그동안 거리로 나가 전쟁 반대를 외치고, 때로는 피켓을 들었다. 때로는 인형극 무대를 들고 대추리·남일당·두물머리로 갔고 희망버스를 탔고 제주 강정에도 갔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처지와 닮은 이웃들을 만나 손을 잡고 같이 아파하면서 연대의 힘을 경험했다. 혼자일 때는 보잘것없지만 함께 있을 때 힘이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이번 공연 무대를 우리의 현장으로 꾸몄다. 우리의 현장은 날마다 선착순 달리기를 해야 하는 학교이고, 재개발이 되고 있는 우리 동네이고, 우리를 따돌리고 주눅 들게 하는 불공평한 사회이다. 우리는 직접 만든 타악기와 인형, 블랙라이트의 신비한 빛에 그 이야기를 담았다. 관객들은 공연이 ‘어메이징’하다고, ‘기적’이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우리가 공연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가슴 뭉클한 감동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거꾸로 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내 것을 덜어 나누고, 내가 앞서 가지 않아도 살만하다는 것을, 우리가 잃지 않으려고 부여잡고 있는 것을 놓는 순간, 그 두려움을 떨쳐내는 순간 오히려 행복해진다고 말하고자 했다. 거꾸로 가자. 그 길이 지금 밀양을, 강정을,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을 살리는 해법이기도 하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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