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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09 19:16 수정 : 2013.06.09 22:31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믿기지 않는 뉴스다. 오바마 정부가 미국인들의 개인전화 사용 기록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의 이메일 및 채팅 내용, 인터넷 정보 등을 광범위하게 감시해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버라이즌과 페이스북, 야후, 구글 등 주요 통신 및 인터넷 업체가 국가안보국에 서버의 정보를 통째로 제공해왔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미국인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인사들이 경악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의 프리즘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개인별 영장 청구도 없이 하루에 약 30억통의 통화 기록을 수집하였다고 하니 그 인권침해의 규모 면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회담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의 정보수집 활동은 비밀리에 의회 동의 절차를 거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변명 중 하나는 “미국인 여러분의 전화는 감청되지 않았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국가안보국이 시내 통화 기록까지 모두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니 미국 거주자 정보는 건들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설령 미국인 통화 내용은 듣지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다. 미국 거주자들의 개인정보 사찰은 안 되지만, 그를 제외한 외국인들의 전화 내용, 이메일, 페이스북, 인터넷 메신저의 내용들을 무조건적으로 조사하고, 이유 없이 감시하고, 또 수집된 정보를 함부로 처리하고 남용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말인가.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 정부는 이제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며 개탄하고 있다. <폭스 뉴스>와 같은 보수적인 방송매체조차, 부시 정부의 영장 없는 전화 도청도 지금 오바마가 하고 있는 정보수집만큼 광범위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오바마 정부가, 아니 미국 사회가 이러한 사실 앞에 어떠한 대응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전 국정원장 원세훈씨가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수정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하여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을 정치공작에 배치하여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나 트위터 등에 종북좌파 척결을 내세우며 야당 후보를 비난하는 댓글을 올려 선거개입 활동을 하게 한 혐의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일해야 할 국정원 직원들을 선거공작에 동원한 행위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로서, 그 책임자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응분의 사법상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해 축소 일변도로 수사를 끝냈다. 새 정부의 검찰은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과감한 조사를 벌이는 듯했지만, 선거법 공소시효를 눈앞에 두고도 아직 구속영장 청구를 단행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고 있다.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 정보기관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체제 보위를 위한 정치공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적인 합의가 되었다. 박종철씨에 대한 물고문과 남영동에서의 김근태 의원에 대한 전기고문을 겪으면서, 이제 우리 국민의 의식은 정보기관의 전횡과 권한 남용을 용인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국민의 뜻을 잘 이해하고 받들어 법무부와 검찰은 치졸한 정치공작을 벌인 전 국정원장의 사법처리를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 구속할 사람은 구속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으라.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뒷걸음질치는 사이,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는 어디에 와 있는지를 다시 한번 되묻게 된다. 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룬 저력으로 국민의 인권 보호에 앞서가는 한국임을 보여주면 좋겠다.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관련영상] 국기문란 국정원, 개혁될까? (한겨레캐스트#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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