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20 19:04
수정 : 2013.06.2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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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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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힘 빼라. 야구 중계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유연해야 힘을 쓴다. 남북대화를 대하는 우리 정부, 덩치는 크지만 너무 경직되어 어설퍼 보인다. 대화 형식에 관한 집착은 근거도 없고,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고집을 피울 문제도 아니다. 통일부는 남쪽에만 있다. 북쪽에 없다. 그래서 통일부 장관이 나서는 회담에서 형식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게 형식이 중요한가? 그러면 격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담을 하면 된다. 총리회담이나 경제회담, 국방장관회담 등 얼마든지 가능하다. 형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인식은 촌스러울 뿐이다. 최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봐라. 형식 파괴다. 신뢰가 없거나, 부족하거나, 혹은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할 관계일수록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닉슨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지만, 실질적인 협상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했다. 유럽통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장 모네는 신뢰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솔직함이라고 했다. 형식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신뢰 프로세스’가 허구라고 확인시켜 주었다.
왜 그랬을까? 오랫동안 남북대화의 역사에서 어이없는 희극으로 기록될 사건의 배후는 무엇인가? 국내정치다. 북한 행태에 대한 전반적인 피로감, 그리고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는 일상의 반감에 기반하고 있다.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의 존재감도 없다. 외교안보는 보수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도 있다. 외교를 문제해결의 관점이 아니라, 국내정치의 이념적 위치에서 접근하는 것이 유행이다. 그래서 홍보부서가 정책부서를 끌고 가는 듣도 보도 못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오직 국내정치적 효과만 있고, 남북관계는 상관없다는 태도다.
증오에 사로잡혀, 미래의 문을 닫아건 정책의 생명력은 어느 정도일까? 어둠 속에서만 빛난다. 대립이 지속되어야 북한에 대한 분노를 동원할 수 있다. 그래야 국내정치에서 이념을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햇볕 아래에서는 정당성이 없다. 국제적으로 대화 국면이 시작되면 이념 세력의 공간은 줄어든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면 형식을 고집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여론. 이중적이다. 북한에 대해 대체로 보수적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결과도 평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기적으로 보수적인 여론을 업고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나서면 지지율이 올라간다. 그래서 결과는? 위기의 일상이고, 분단으로의 역주행이다. 이명박 5년은 국내정치적 접근이 가져올 피해가 심각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접근을 5년 연장할 수 있을까? 정치는 여론이라는 파도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다. 정책의 결과를 인식하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북·중 양국이 전략대화를 하면서 북한은 다시 비핵화라는 개념을 꺼냈다. 6자회담의 출구가 어딘지를 언급한 지금이 바로 입구로 들어설 때다. 다시 회담의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만나지도 않고 진정성을 거론하면서,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남북대화도 하지 않으면서 북-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 되겠는가? 다시 외교가 주도하는 국면을 만들려는 중국에 가서, 남북관계를 위해 중국의 역할을 요청하면 뭐라고 할까? 중국은 아마도 ‘직접 하면 되는데’ 혹은 ‘직접 할 수 있는데’ ‘왜 우리에게’,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부정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길을 잃은 신뢰 프로세스가 원래의 말뜻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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