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20:05
수정 : 2013.07.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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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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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님의 공약집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교육 분야 공약의 첫머리가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 교육”이었거든요. “과도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 앞에서는 솔직히 아찔했습니다. 보수 후보의 공약집에서 이런 내용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세부 정책들도 적지 않은 고민을 농축해낸 결과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치명적인 결함이 엿보였고, 이로 인해 의도한 결과를 내기 어렵다고 예상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교사의 입장에서 고민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창의력이 없는 교사가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꿈과 끼가 억압된 교사가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기란 어렵겠지요. 그런데 공약에는 ‘학생’의 꿈과 끼만 있을 뿐, ‘교사’의 꿈과 끼는 없더군요.
교사의 꿈과 끼를 키워주려면 무엇보다 ‘회의’를 해야 합니다. 교사들의 말문을 트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만날 하는 교무회의가 있지 않냐고요? 교사들에게 ‘교무회의에서 첫마디 하는 데 몇년이 걸렸냐’고 물어보십시오. 제가 많은 교사들에게 질문했는데, 다들 적어도 10년 이상 걸렸다고 답합니다. 그거 회의 아닙니다. ‘지시사항 전달’입니다.
그런데 ‘회의다운 회의를 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혁신학교에서는 교장, 교감, 부장교사, 평교사 모두 모여 회의다운 회의를 합니다. 이게 무늬만 회의인지, 진짜 회의인지는 직접 참석해보면 몸으로 느껴집니다. 진짜 회의라고 느껴지는 순간, 교사들은 여태껏 마음속에 담아놓고 있던 걸 확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제발 이런 건 하지 말자, 이건 이렇게 해보고 저건 저렇게 해보자…. 그 결과 갑자기 학교교육이 다방면으로 급속히 바뀝니다.
그러다 보면 부작용도 생깁니다. ‘교사들이 교장에게 기어오른다’고 불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도 있을 겁니다. 일방적 의사결정에 익숙하고 회의 문화에 낯설다 보니 적절한 균형점 도달에 실패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혁신학교들 사이에 편차가 작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궁합이 잘 맞아 회의가 잘 이루어지면 ‘혁신학교 주변 집값이 오른다’는 기사에 인용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지만, 회의를 하다가 삐걱거리고 다투고 그러면 그런 학교의 대열에 오르지 못하는 거죠.
‘전교조 학교’니 ‘특혜’니 하는 시비는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2012년 기준 경기도 혁신학교 교사들 중 교총 회원은 31%, 전교조 조합원은 14%이고, 서울은 전교조 비율이 초·중·고별로 각각 20%, 29%, 33%였습니다. 심지어 전교조 조합원이 전혀 없는 혁신학교도 경기도에 20개, 서울에 5개나 있습니다. 그리고 1년에 1억~1억5000만원씩 지원하는 게 ‘특혜’라면, 1년에 2억원씩 지원하는 자율형공립고나 1억5000만원씩 지원하는 농어촌 전원학교 등 많은 시책사업 학교들 또한 모두 특혜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의 문용린 교육감은 혁신학교 추가지정에 반대하고 혁신학교들에 대한 감사를 지시하는 등 혁신학교를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에 혁신학교를 방문하여 교사·학부모·학생들과 폭넓게 대화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대통령님의 차례입니다. 텔레비전 연설에서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겠다고 힘주어 발언하시던 진정성을 실어, ‘꿈과 끼’를 키우기에 최적 모델인 혁신학교를 방문해 주십시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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