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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7 19:09 수정 : 2013.07.07 19:09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박근혜와 앙겔라 메르켈. 두 사람은 공통점이 꽤 많다. 메르켈은 최초의 여성 독일 총리이고, 박근혜는 최초의 여성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두 사람 모두 ‘철의 여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때때로 그렇게 불리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이공계 출신 정치인이다. 박근혜는 전자공학을, 메르켈은 물리학을 공부했다. 두 사람 모두 ‘선거의 여왕’이었다. 박근혜의 선거 전적은 설명이 필요 없을 터이고, 메르켈은 정치적 멘토였던 헬무트 콜 정권이 1998년 총선에서 패배하자 기민당의 사무총장이 되어 1999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일곱 번의 선거 중 여섯 차례의 승리를 일구어냈다. 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력은 두 사람 모두에게 정치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당내 선거에서 좌절을 맛보았다. 메르켈은 2002년 에드문트 슈토이버에게 기민당 총리 후보 자리를 내주었고, 박근혜는 2007년 이명박에게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내주었다. 두번째 도전에서 메르켈은 총리직을 움켜쥐었고,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올해로 9년째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메르켈의 재임 기간 동안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운명의 결정자’가 되었다. 남유럽을 중심으로 유로존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메르켈은 유럽연합의 실질적 지도자로 불린다. 많은 국가들이 독일을 모범 사례로 꼽고 그 성공 비결을 배우려 하고 있고, 한국은 이 ‘학습 열풍’에서 모르긴 해도 꽤나 앞줄에 서 있다. 여러 명의 주요 정치인들, 고위 공무원들, 학자들이 독일을 배우기 위해 베를린에 머물고 있거나 혹은 베를린을 거쳐 갔다. 지난 1~2년간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독일에 대한 특집 보도를 한번씩은 다 했다. 오늘날 독일의 성공을 가져온 계기로 알려진 하르츠 개혁은 사실상 지금의 야당인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시작한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연금 개혁 등 경제적으로는 필요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변화를 시도한 역풍으로 사민당은 선거에 패배했다. 마치 한국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시작한 아이러니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독일 정가에서는 개혁은 슈뢰더가 시작하고 혜택은 메르켈이 얻었으며 비난은 사민당이 받는다는 농반진반의 이야기가 흔히 들린다.

박근혜는 메르켈과의 공통점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데 성공할 것인가? 독일이 미니잡을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했듯이 한국은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할까? 관건은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성을 가지고 노동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짧게는 지난 10년, 길게는 지난 30년 동안 심지어 유럽 복지국가에서조차 노동은 계속해서 사회적 보호의 망 바깥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겪어왔다. 그 과정은 여성, 청년, 비숙련 노동자 등 가장 약한 자들로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어왔다. 이것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유럽에서조차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하물며 이미 심각한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의 노동을 보호하는 장치 없이 독일의 정책을 이식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사람 앞에 놓인 정치적 셈법은 엄연히 다르다. 독일 헌법상 총리는 무한정 연임할 수 있기 때문에 메르켈은 9월 총선 승리를 위해 정치적 제스처를 다하고 있고, 더 나아가 유럽연합 대통령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박근혜는 단임 대통령이어서 정치적 야심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으로 끝이어야 한다. 공통점에 도취되기보다 차이점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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