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인 레스터 서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중국 경제에 대한 강의 도중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통해 그 경제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경제 관련 통계는 각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 종합되어 발표된다. 그런데 문제는 중앙정부가 그 통계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 책임자를 평가한다는 데 있었다. 평가가 두려운 지역 책임자들은 객관적이어야 할 통계를 ‘마사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결국 경제가 인식 불가능한 것으로 변해 버리고, 정책은 길을 잃고 만다는 게 원로 거시경제학자의 지적이었다.
정보는 역사의 기본 재료다. 한 사회가 공식적으로 생산하는 정보는, 많은 경우 후대가 장기적인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그래서 편향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정보를 수십년씩 묵혔다 공개하는 이유는 그런 편향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기술과 인식의 발전으로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생산되는 시대다. 정확한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빅데이터’의 이름으로 데이터의 축복을 노래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그 정보를 구성하는 기초 데이터가 생산 단계에서부터 수집하고 정리하는 사람들의 의도 때문에 편향이 생긴다면? 편향된 정보를 기초로 수천만 국민의 운명을 가를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그런 정보를 기초로 정리한 역사를 후대에 두고두고 가르친다면? 이때 데이터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최근 불거진 국정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사태와 통계청의 통계 수치 발표 시기 조절 의혹은, 데이터를 정확하게 만들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사회에 던져주는 사건들이다. 그런 사건 하나하나가 결국 역사의 재료가 되는 정보 생산에 편향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국회의원들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구 하나하나가 난도질의 대상이 될 것이다. 통계청이 더 좋은 경제 성과를 발표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설문 응답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응답 내용을 뒤틀게 되고 국가 통계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말 것이다.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조차 약속된 기간을 지키지 않고 언제든지 공개되고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어떤 기록이든지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데이터를 생산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확히 기록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 기록을 조작해 이득을 얻으려는 권력의 유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 원칙이란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기는 무척 어려운 법이다.
앞으로 정상회담과 관련된 기록은 온전히 남을 수 있을까. 역사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은 온전히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우리 삶의 모습이 날것 그대로 후대 연구자들의 분석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오염된 정보를 후손에게 안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대화록을 공개한 이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에게, 이제 그것을 열람하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우리의 생애가 끝난 뒤에도 후손들이 삶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아는가. 역사와 미래의 존재를 믿는가. 만일 그렇다면 지금 벌인 일이 후대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기술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데이터의 축복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데이터의 저주로 바꾸어 물려주려는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기록의 조작은 기억의 조작이다. 지금 우리는 후대의 기억을 조작하는 일이 여야 합의 아래 대대적으로 시작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원재 경제평론가
‘국정원 셀프 개혁’, 박 대통령 책임회피다[한겨레캐스트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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