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14 19:07
수정 : 2013.07.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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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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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대표는 일을 참 잘한다. 일에 관해선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인정하는 평판’, 즉 정평이 난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대선 패배 후 위기에 처한 민주당을 구하겠다고 나섰다. 잘하고 있나? 아직은 “글쎄”라는 평가가 더 많아 보인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공방 국면에서는 존재감마저 떨어진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정치는 합리성의 게임이 아니다. 합리는커녕 그 단어 앞에 비(非)나 반(反), 또는 초(超) 따위가 붙는 게 더 적절하다. 정치를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풀려고만 한다면 정치문법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게다가 연이은 선거 패배와 같은 엄혹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합리성에 매몰돼서는 위기 탈출이 어렵다. 그런데 김 대표의 리더십이나 당 운영 스타일은 합리성에 경도되어 있는 듯하다. 결단이 부족하고, 선도(leading)보다는 조정(coordination)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정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새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첩경이다. 2011년 말 새누리당의 위기에 등판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성공한 것도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 새롭고 참신한 인물들이 등장해 새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김종인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라는 의제 상징성, 이상돈 전 교수는 4대강 비판 등으로 구축된 합리적 보수의 이미지, 이준석 대표는 발랄한 젊은 보수의 모습을 가졌기에 발탁의 파격성을 넘어서는 대중적 소구력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박 위원장에겐 유력한 대선후보의 위상과 공천권이란 위력적인 무기가 있었다. 새 인물 영입이 용이했다는 말이다. 또 그 공천권으로 국회의원들을 다스리고, 당을 통솔하기 쉬웠다. 그런데 지금 김 대표에겐 그런 수단이 없다. 총선은 3년이나 남은데다, 자신의 임기는 총선 1년 전에 끝난다. 민주당의 역대 대표 재임사를 볼 때 내년 지방선거 후에 김 대표가 계속 당을 이끌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기에 당 외의 안철수 변수 때문에 당의 미래가 불투명하니 김 대표가 인적 혁신을 통한 변화를 보여주기에는 대단히 불리한 여건이라 하겠다.
욕먹어야 할 때는 먹는 게 리더십이다. 김 대표는 당내에서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공개하자고 요구할 때 과감하게 거부했어야 했다. 정치적으로 필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정원의 사본 공개로 이미 국민들이 진실을 확인한 마당이었기에 그 이상의 공개는 거부하는 것이 옳았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위원의 적격성 논란과 관련해서도 제때 손을 쓰지 않았다. 민주당의 진선미·김현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억지일지라도 국정조사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하는 게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위 위원 임면이야 원내대표의 권한이지만 당대표가 결단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에 김 대표의 결단이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 야권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 공백이다. 2017년 대선을 생각할 때 괜찮은 후보들은 있지만 판을 바꾸고, 흐름을 만들어갈 큰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일상정치에서 승리하지 않고 선거정치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착각이다. 지금 이대로의 민주당으로는 안 되고, 민주당만으로도 안 되고, 민주당을 빼고서도 안 되는 것이 야권의 재구성이다. 결국 민주당 대표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김 대표는 더 큰 구상 속에 ‘사고’ 치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최소한 내년 6월까지 누가 뭐래도 야권의 리더는 김 대표다. 담대함을 넘어 과격하게 결단하고, 거침없이 밀고 가야 한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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