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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6 18:38 수정 : 2013.07.16 18:38

정정훈 변호사

재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전세 재계약과 보증금 인상 문제로 ‘집주인’과 전화 통화를 하며 말했다. “계약서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저희 집으로 오셔서 계약서 작성하시지요.” 통화를 마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집주인’에게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한 것이다.

그때 이후로 반복해서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집은 누구의 것인가? 부동산이라는 재산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집은 소유권자인 ‘집주인’의 것이다. 그러나 세 살고 있는 임차인들은 그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집이라는 공간의 관계성과 삶에 주목하는 우리들의 언어감각이고, 생활의 상식이다. 세입자인 내가 ‘집주인’에게 ‘우리 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집은 그런 특수한 재화다.

이렇듯 ‘우리 집’이라는 말에는 중요한 통찰이 깃들어 있다. 소유권이 기준이 아니라, 삶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삶이 있는 곳이 집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주택임대차제도는 ‘우리 집’이라는 생활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2년에 한번 불쑥 ‘집주인’에 의해 ‘우리 집’이라는 공간과 관계의 지속 여부가 시험대에 오른다. 요구하는 대로 보증금(월세)을 올려주든지, 다른 집을 구하든지.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2년에 한번 속수무책으로 던져지는 이 폭력적 선택지를 우리는 ‘계약 자유의 원칙’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반면에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은 우리와는 다른 관계를 제도로 확립하고 있다. 임대차 기간이 종료되더라도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재계약을 거부할 수 없다. 가령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의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하면, 임차인이 임차료를 내지 않거나, 주택을 부당하게 훼손하거나, 임대인 또는 이웃의 안전을 부당하게 침해했거나, 임대인 또는 직계가족(임대인의 배우자, 부모 또는 자녀만을 의미)이 그 주택에 들어와 살 것이라는 등의 사유가 없으면, 계약기간이 종료되더라도 임대인은 임차인이 계속적으로 그 집에서 거주할 권리를 부정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독일 민법 주택임대차 관련 규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원칙 중의 하나가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고, 특히 임차료를 인상하기 위한 계약 해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도 집에 대해서는 이러한 새로운 상식과 제도가 필요하다. 집은 ‘집주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곳을 ‘우리 집’으로 여기며 삶과 관계를 펼쳐가는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집이라는 특수한 상품에는 소유자의 권리 못지않게 거주자의 권리가 중요한 것이다.

지난 18대 국회 이후로 집에 대한 이러한 상식을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러나 당시 법안에 대한 법무부의 의견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거나 시장 질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고, 대한변호사협회의 의견은 “주택임대차의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없”고, “계약 자유의 원칙에도 위배될 수 있으므로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계약이 부자유한 폭력적 현실은 외면한 채, ‘계약 자유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는 법 원리만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는 것이다.

전세 대란에 대해서는 백약이 무효였고, 기존의 임대차 관계를 전제로 이를 해결할 ‘신의 한 수’를 찾을 수도 없다. 집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안정성과 공정성을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임대차 관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조명래 교수의 지적처럼,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절반을 넘어서는 전세 제도의 특수한 측면, 즉 재정적 기여도의 측면에서 보면, 집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사회적으로 이미 제기되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정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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