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21 19:00
수정 : 2013.07.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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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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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6월 이집트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랍의 봄을 알리는 재스민 혁명은 그렇게 성공해 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년 만에 이집트의 군부는 시민들의 시위 사태를 이유로 또다시 대통령을 축출하였다. 쿠데타를 주도한 압둘파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헌법재판소장을 임시대통령으로 지명하더니, 자신은 제1부총리로 취임하였다. 군부는 항의하는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에 총격을 가하여, 최소한 51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하였다.
미국은 민선 정부가 군부에 의해 무너지는 사태를 예의 주시하면서도 이 불법 군사행동을 쿠데타라 부르지 않았다. 도리어 최근 이집트를 방문한 미국 특사는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를 망치지 말라며, 군부가 세운 정부를 사실상 승인하고 반대파를 잘 포괄하여 사태 수습을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맛은 씁쓸하다. 1960년 4월 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부가 5·16 군사쿠데타로 무너진 뒤 미국은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고, 1980년 민주화의 봄이 전두환과 노태우의 쿠데타에 의해 끝난 뒤, 광주 학살의 주역 전두환의 방미를 환대하며 그들과 손을 잡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원칙의 잣대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런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통일의 길에서는 주변국의 협의와 공감을 얻으면서도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자신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였다.
한동안 군사적 긴장을 높여가던 남북한 당국은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하기 위한 실무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화의 전망은 밝지 않다. 북한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증진 속에 세계와 협력하여 경제를 살려가는 길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강화하고 한국에 최신형 무기를 팔고 있다. 급기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군의 대응 능력 부족을 이유로 들며 2015년 이후에도 미군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의 손에 남겨 둠으로써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는 사대적 발상은, 현재의 동북아 정세를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전략적 실책이 될 것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는 시급히 자각하여야 한다.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남북한 관계를 좌지우지할 주변국 사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한국이 과연 제대로 된 대응을 주도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덧붙여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연기 요청을 알리는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에 대해 한 미국 독자가 단 댓글이 우리의 얼굴을 붉어지게 만든다. “농담하는 건가요? 남한은 그렇게 부유하고 힘 있는 나라이면서, 자기들 방어를 위해 계속 우리 돈을 써 주기를 바라다니요?”
한국이 국방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미국에 손을 벌리는 것이라면 이제 그런 일은 그만하자. 오늘날의 미국이 자선을 할 정도로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며, 한-미 관계의 호혜와 평등을 위해서도 그러한 비정상적인 관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시작전통제권 회복이 한-미 협력 관계를 약화시킬 일도 없다. 한국 정부가 지난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고, 북한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는 정상국가로서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함께 추구하는 파트너로 나서도록 이끌어갈 때 우리 군비 부담은 줄어들고 통일의 길도 열릴 것이다.
백태웅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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