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7.24 19:01 수정 : 2013.07.25 14:21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충남에 있는 한 중학교에 가서 강연을 하기 전 학생들에게 꿈을 물었다. 예상대로 의사,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작가, 요리사, 최고경영자(CEO) 따위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물었다.

“노동자가 꿈인 학생이 있나요?”

학생 35명 중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일주일 전, 인천의 변두리에 있는 공립고등학교에서도, 부산의 달동네 도서관에서도, 서울의 변두리 중학교에서도 노동자가 되겠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미래가 노동자라는 것을 실패로 받아들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며, 노동권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희망버스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외면했다. 단행본 마감이 임박한데다 희망버스 이틀 뒤 아이들과 떠날 공연 여행에 대한 부담도 컸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또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는 300일 가까이 송전탑에서 농성하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나 혼자 누린 평화와 안락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후배들과 아들딸들을 데리고 희망버스에 탔다.

대법원은 이미 3년 전, 같은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과 복지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차별을 두는 파견노동자 제도가 불법이라고 확정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현대차는 법원의 확정판결을 무시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미뤘다. 현대차의 불법, 그것이 최병승과 천의봉 두 사람을 송전탑에 오르게 한 이유였다.

희망버스는 300일 가까이 이어진 그들의 외로운 싸움을 지지하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현대차는 컨테이너 장벽과 엄청난 경비 인력, 어마어마한 양의 소화기와 소화전으로 희망버스의 희망을 짓밟았다.

그날 무시무시한 살수차와 소화기를 피해 문화제가 열릴 송전탑 아래로 와서 처음 마주친 것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박정식 열사의 분향소였다. 쓸쓸한 분향소에서 홀로 영정을 지키던 동료 노동자는 다섯 살, 여덟 살짜리 아이가 절을 하자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문화제가 마무리될 무렵 최병승의 목소리가 송전탑 아래로 울려퍼졌다. 두렵고 외로웠다고 했다. 송전탑을 그만 내려올 작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절망 속에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싸우는 동료들 때문에 더 버텨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죽지 않겠다고. 그 말이 고마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작 하룻밤의 연대가 그에게 힘이 될 수 없겠지만 올라가서도 당신들의 싸움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서울로 올라오는 밤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날이 밝자 전경련과 그들의 앵무새 언론이, 자본의 시녀가 된 경찰이 “폭력행위는 자유민주주의 및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며 끝까지 불법 행위자를 찾아내 검거하겠다고 을러대기 시작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현대차의 불법, 화재 진압용으로 써야 하는 소화전·소화기를 공격용으로 쓴 현대차 경비용역의 불법은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노동자가 될 내 아이의 미래가 두렵지 않을 때에야 고질적인 대학입시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내 아이의 미래가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될 수 있다. 희망버스 참가자 일부의 분노를 핑계 삼아 자신들의 불법과 폭력을 숨기려 하는 자본의 치졸함이 송전탑에 매달려 살자고 외치는 두 노동자를 또다시 절망으로 이끌까 두렵다. 더는 헛된 죽음이, 절망이 부르는 죽음은 없어야 한다. 살자, 제발 함께 살자.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